매일신문

경제불황 대리운전 업계에도

지난 31일 저녁 6시30분. 대구 범어동의 「P대리운전」 사무실. 일찌감치 출근한 전임기사 5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전날 있었던 일이며 도로상황 변화, 안전에 대한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 교육이 끝나고 7시30분쯤이면 출동해 음식점과 주점을 상대로 홍보작전을 먼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업체난입 진정 분위기= 지역에선 대리운전 업체가 지난 1998년 처음 설립됐지만 비싼 요금 문제 등으로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수요가 급증하면서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자 가격 인하 경쟁이 붙으면서 대중화됐다. 대리운전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지 2년만인 작년 대리운전 하루 이용객은 1만3천여명으로 시장규모가 하루 2억여원 연간 700억원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당시 업체관계자들이 추정한 대리운전 업체 수는 대략 200여개. 종사자는 운전기사 2천여명에 기사 수송용 승합차 운전기사 400여명 정도로 모두 3천명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겨울을 지나면서 경제불황으로 수요가 줄고 과당경쟁으로 인해 수지를 맞출 수 없자 사업을 정리하거나 매매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P대리운전」 최모 대표는 『야간에 운전을 하며 느낀 바로는 작년 12월에 비해 30% 정도 업체만이 운행하는 것 같다』고 말해 대리운전 업계의 어려움이 심상치 않음을 나타냈다. 최 대표에 따르면 경기 불황으로 사람들이 술을 마실 경우 차량 사용을 자제하면서 이용객이 「작년 대비 20∼30%」가 감소했다. 신규업체 증가수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많으면 한 달에 10개 정도 업체가 들어서던 것이 현재는 1개 정도까지 떨어졌다.

◇생계성 운전자들= 일반 택시와 달리 야간에만 이뤄지는 일이라 대리운전은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노동강도가 높은 편이라 보통 의지로는 힘든 편.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대리운전자들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 흔한 편이다. 예전 하던 허브용품 사업이 잘되지 않아 정리를 하는 과정에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한모(32)씨. 그나마 젊음을 믿고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막상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란다. 그러나 『동년배들이 많다 보니 서로 의지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친구들 중에도 다른 일을 하다가 잘 안돼서 대리운전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씨는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인생에서 한번씩 실패를 본 사람들이 조금 몰리다 보니 많은 대리운전자들은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것을 꺼리는 실정이다. 실제로 두산동의 길가에서 만난 「D대리운전」의 기사는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대리운전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얘기해 줄뿐 더이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일을 찾을 때까지」 잠시 스쳐지나가는 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투잡스족 맹활약= 대리운전업계에는 유난히 투잡스족(두 가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낮동안 다른 일을 하고 나서 밤에 대리운전을 하는 것. 몸은 힘들지만 어려운 사정에 벌이를 맞추자면 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종으로는 영업직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근무 시간 틈틈이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 고시를 준비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사람, 용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대리운전을 그만 둔 김모(33)씨.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청도의 처가집에 살면서 낮동안엔 학교에 납품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수면시간은 보통 1∼2시간이 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일요일엔 꼬박꼬박 교회를 챙겨다녔다』고 최대표는 얘기했다. 또다른 김모(33)씨는 보험영업을 하는 중에 손해사정인 자격증 공부를 했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하면서 생활했다.

◇불투명한 미래= 대리운전 업계에서는 이미 대구에서 대리운전 수요나 공급이 포화상태에 도달했다고 본다. 신규업체 증가 추이도 눈에 띄게 줄었고, 사업 정리나 매매 물건도 상당히 보인다. 사업에 특별한 규제가 없어 쉽게 시작했던 사람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자 발을 빼고 있는 것. 그러나 『사업자금을 날려 기본적으로 200∼300만원, 많게는 500만원까지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최대표의 설명이다. 기사 운송용 승합차 등은 상태가 나빠 처리하지 못하고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상황이 나빠진 원인으로 1만원대(보통 기본 4㎞에 1만2천원 수준)의 낮은 요금 체계때문이라는 것이 업자들의 반응이다. 그정도 요금으로는 수지를 맞추기에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관련 제도나 법규도 입법 준비 중에 있을 뿐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여타 운송수단과 같은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워낙에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저요금 체계로 사업을 할 수 밖에 없다. 최대표는 『무엇보다 적정요금에 대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진 자가운전자들은 이제 집근처에서 술을 마시거나 아예 차를 놔두고 모임에 가면서 대리운전 이용객들은 많이 줄고 있다. 음주운전 방식 변경 직후 30% 정도 줄었던 고객들은 대부분 돌아왔지만,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불황으로 대리운전 이용객 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는 게 업자들의 반응이다. 그나마 예전 2∼3시에도 몰리던 이용객들이 이젠 1시 정도면 다 빠져나가고 만다고 한다.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는 대리운전이지만, 과당경쟁으로 허덕이고 있는 현실속에 닥친 경제불황으로 대리운전 업계는 최악의 상황에 접해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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