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단풍나무 숲으로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대표작 '님의 침묵'의 앞부분이다.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서정시로 보이게 하나 그 안켠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한과 연민이 절절하게 맺혀 있다.
3.1운동을 주도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쓴 민족시인이자 '불교 유신론'을 제창한 큰스님이었던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변절해도 광복 한해 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쪽같은 기개로 일관한 애국지사였다.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검정고무신만 신었다는 그는 일제의 총독부 쪽은 바라보기조차 싫어 서울 성북동의 조그마한 북향집 '심우장'에서 한겨울에도 불지피지 않은 방에 기거했을 정도였다.
어느날 지조를 꺾은 육당 최남선을 만나자 '육당은 벌써 죽었어'라면서 침을 뱉고 돌아서 버렸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는 떠난 지 오래됐지만 숭고한 정신과 사상은 날로 빛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뜻을 기리는 '만해마을'이 조성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는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입구 2천여평에 100억원을 들여 이 마을을 조성, 오는 9일 준공식을 가진다.
이 마을은 만해박물관(3층), 만해사(2층), 문인의 집(4층), 만해학교(2층), 심우장(2층), 경절문, 님의 침묵 만해광장(272평) 등 7개의 건축물로 구성됐다.
▲내설악을 배경으로 한 이 공간의 '문인의 집'과 '만해학교'는 호텔 수준의 숙박시설과 국제회의가 가능한 연수원 시설을 갖췄으며, 그의 말년 거처의 이름을 딴 '심우장'은 문인과 승려들을 위한 별채로 토론을 하기 알맞도록 꾸며졌다 한다.
'건물마다 그의 사상을 담고 있으며, 안팎의 경계가 사라지는 개념을 도입'(설계자)했을 뿐 아니라 이처럼 불교계가 특정 승려를 기리는 매머드급 시설을 마련하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백담사에서 열어 왔던 '만해축전'을 크게 확대해서 8일부터 11일까지 갖게 되는 모양이다.
이번 축전에는 시인 500여명, 화가 40여명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모여 시 낭송, 즉석 그림 그리기, 만해 시화 부채전, 심포지엄 등을 펼치게 돼 그를 기리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전망이다.
나라가 온통 어지러운 요즘 만해가 새롭게 조명된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차제에 진정으로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덕목은 그의 도도한 기개와 투철한 애국정신, 숭고한 사상이 아닌가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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