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산율 하락에는 날개가 없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 및 한국의 인구현황'을 보면 40년 전 여성 1명의 출산자녀수가 6명에서 2002년 1.17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는 세계평균 2.8명이나 선진국 평균 1.6명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출산장려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번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이 부담이 될 전망이다.

출산율 1.17명은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가임여성(14~49세)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결혼한 여성은 한 명 이상을 낳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히 주목할 점은 저출산 현상의 '속도'이다.

지난 1974년 3.6명, 1983년 2.1명, 1990년 1.6명, 2000년 1.47명에서 지난해 기준 1.17명으로 30여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격히 떨어진 셈이다.

선진국에서 100년에 걸쳐 초래된 저출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20, 30년 안팎에서 급속히 이뤄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

"아이요? 노력은 하겠지만 또다시 낳고 키울 형편이 안됩니다". 방문교사인 박모(32)씨는 첫째딸을 나은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둘째아이 출산을 미루고 있다.

아이를 가진 기쁨도 잠시, 맡아줄 사람을 못구해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지난번 직장을 그만뒀다는 박씨는 다시 육아전쟁을 치를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역시 맞벌이를 하고 있는 서모(35.자영업)씨는 "첫 애를 맡긴 친정엄마에게 또 아기를 맡기자니 미안하고 보모를 들이자니 그 돈도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도 "시집과 장남인 남편이 은근히 바라는 눈치긴 하지만 피임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업주부인 김모(29)씨는 "주변에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거나 꼬마들만 두고 나가는 가정을 많이 보게 된다"며 "그보다는 부부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또 양육비 부담대신 경제적 여유를 노후를 위해 저축하자고 남편에게 조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월 한국모자보건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출산의 원인은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6.8세로 선진국보다 늦은 데다 사회적으로도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주택, 보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늘어나는 딩크족

"전 결혼 2년차 주부입니다.

직장생활을 접은 지 얼마 안된 탓에 아이갖기를 원하지만 병원 다니며 쏟는 시간과 정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갈등 중입니다.

아이에 대한 강박감에서 벗어나 생각을 바꿔볼까 합니다…"(ID 사랑포유). "결혼 6년차 주부예요. 한참 어려운 때인 IMF때 결혼해서 미루다보니…. 아예 자녀를 갖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2년 정도 됐어요. 제가 일을 하는데 아무래도 아기 낳으면 봐줄 사람이 없어서요"(ID 홍차공주).

인터넷 다음 카페 딩크족 (cafe.daum.net/dink)에 올라 있는 자기소개글이다.

이 사이트는 이른바 아이를 갖지 않고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려는 맞벌이 부부들인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들이 글을 올리고 의견을 교환하는 곳이다.

가입회원수는 1천100여명. 이 카페 운영자는 물론 회원 모두가 딩크족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딩크족이 무자녀를 고집하는 배경도 육아비용에 대한 부담에서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자녀를 위해 바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압축됨을 엿볼 수 있다.

▨출산장려 대책은 없나

여성들에게 국가 장래를 위해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예전 가족계획으로 정부가 고무줄처럼 출산을 억제하거나 권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찾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대비 인구정책'에 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공청회를 열고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을 경우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출산장려안을 추진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여성계에서는 출산율 저하와 육아의 어려움이 갖는 상관관계에 주목하면서 그 근원에 여전히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통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요구하면서도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를 떠맡기는 것은 물론 직장일까지 병행해야 한다는 이중삼중의 부담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일선 연구원은 "여성에게 전적으로 출산과 보육의 책임을 떠안기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할 시점"이라며 "출산율 감소 문제는 사회구조적.문화적으로 접근, 선진국에 비해 취업률도 낮으면서 출산율도 낮은 특이한 구조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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