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증가하던 자살에 국내 최대 기업 최고 경영자까지 합류하자 시민들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끊거나 심지어 성형수술이 잘못됐다고 해서까지 생명을 버리는 일이 잇따르는 가운데 현대아산 정몽헌 이사장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사회가 심각한 병증에 빠져 있으며 이에 대처할 장치가 국가 차원에서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정 이사장 자살 소식에 회사원 김진형(33.대구 범어동)씨는 "우리 경제계를 대표하고 국가적 사업을 이끈 사람이 자살하다니 너무도 충격적"이라고 했고, 김찬우(30.대구 월성동)씨는 "정치에 무리하게 기업을 끌어들인 결과가 아니냐"고 정치권을 의심했다.
경북대 의대 강병조(60) 교수는 "대북송금 문제로 국내외가 어수선하자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대북송금과 관련한 모든 것을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정범 과장도 "대북송금과 관련해 수사 범위가 좁혀지고 결정적인 비밀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압박감을 떨쳐내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말했다.
대구YMCA 김경민 관장은 "남북 관계에서의 중요한 채널을 잃었다"며 "왕자의 난, 현대 내의 권력 암투, 정치권과의 관계, 대북 비자금 사건 등 연이어 터진 악재들이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너무 벅찼을 것"이라고 동정했다. '6.15 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구.경북 통일연대' 김두현 대외협력부장은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사업 등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정 회장의 죽음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고 했다. 수성구청 공무원 김모(36)씨도 경제 전반이나 남북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다.
반면 대구 생명의 전화 이경미 과장은 "불안이나 우울증이 정신과 환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자살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최후로 선택하는 잘못된 수단"이라고 경고했다. 이 과장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감이 극대화될 때 적잖은 사람들이 위기에 빠진다"며 "안그래도 급증하는 자살 현상에 이번 사건이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고 했다.
자살 급증의 심각성은 이미 여러차례 경고돼 왔으며(본지 2002년 11월28일자, 12월2일자 등), 국내 자살은 지난 10년 사이 2배로 증가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증가율을 기록했고 자살률(인구 10만명당 26명)은 세계 3위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의 자살자는 외환위기 사태 때보다 더 증가, 작년 경우 전국에서 1만3천55명이 자살해 하루 평균 36명꼴에 달하고 있다. 이때문에 대구 생명의 전화 관계자는 "최근 들면서 상담자가 더 늘고 있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며 "국가 차원에서 자살 예방 전문 시스템 구축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경찰은 정 회장 자살 직전이던 지난 3일에만도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이 접수돼 경위를 수사 중이다. 이날 오후 4시50분쯤 대구 복현동 모 아파트 김모(75)씨 집에서는 김씨가 목을 매 숨진채 발견했다. 경찰은 김씨가 지병을 비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후 3시10분쯤엔 대구 신암동 모 여관에서 우모(28.서울)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급 장애인인 우씨는 지난 1일 애인과 결혼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가 일이 꼬이자 자살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오후 4시쯤엔 영천 교촌동 강모(75) 할머니 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음독해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할머니가 신병과 생활고를 비관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오전 6시50분쯤엔 포항 해도2동 구모(25.여)씨의 셋방에서 구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구씨가 '엄마에게 미안하다. 너무 힘들어 먼저 가는 딸을 용서하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에 앞선 지난 2일 오후 8시50분쯤에도 대구 복현동 모 아파트에서 이모(33)씨가 17층 높이에서 투신 자살했다. 지난달 17일엔 인천에서 30대 주부가 고층 아파트에서 자녀 셋과 함께 창밖으로 투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달 31일에는 울산에서도 주부가 두 자녀를 숨지게한 뒤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지난달 24일 목숨을 끊은 한 주부는 성형수술 결과에 실망했던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이 너무 심약해져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사회1.2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