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노무현 대통령께

성하(盛夏)에 다망하신 가운데 나라 안팎의 일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대통령께 외람되나마 좁은 소견으로 몇 가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다소 무례가 있더라도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도 개혁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민정부 이후 개혁으로 떠들썩한 지가 10여년은 넘은 듯한데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국내외 위기는 왜 갈수록 심화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보수는 자유민주주의고 진보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보·보수 타령을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은 사실은 교조주의나 지역주의, 파벌주의 또는 급진주의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진보라고 하지도 않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실용주의자들을 보수적이라고 보지도 않지 않습니까?

서유럽에서 보듯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은 큰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대립과 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상호침투'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누가 어떤 정책으로 현안을 잘 해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교조적으로 현상 유지를 바라거나, 본분을 넘어서 정치력만 강화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을 확실히 보수·수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구'니 '보수'니 하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저 좋은 정책을 써서 현안을 해결하면 될 일이지 공연히 보수·수구니, 개혁·반개혁이니 하는 말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엄밀히 따져보면 노조나 전교조, 민주당이 가장 견고하게 보수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민중은 노동자가 아니라 도시빈민과 정치세력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 소외된 농어촌 주민들 그리고 청년 실업자들입니다.

국제 분업이라는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경제원칙입니다.

서너 사람을 고용할 돈으로 동남아·중국 근로자 수십 명을 고용할 수 있는 제조업의 고임금 구조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기업하는가?" 라는 개탄과 함께 제조업의 급속한 해외 탈출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은 고용흡수력이 높은 만큼 제조업의 이탈은 이미 고용감소→실업증가 →소비감소 →경기악화 →투자감소 →고용감소 심화 등의 악순환 구조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경영은 뒷전으로 주가를 띄워 회사를 팔아 차액을 남기고 상속세 피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일부 재벌과 유학가는 아이에게 법인카드를 들려보내는 등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것도 주요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도 제가 보기엔 제 길을 가는 것 같진 않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시장원리를 재해석하여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날이 갈수록 뿌리도, 근거도 없는 이상한 '평균주의'에 입각한 모험적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개혁했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되어갑니다.

이 과정에서는 오직 포퓰리스트만이 권력을 잡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언제 아르헨티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민주주의는 문자 그대로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되고, 만연한 평균주의로 제조업을 기피하면서 2백만명도 넘는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꿈꾸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30만에 가까운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 젊은이의 일자리도 없어졌다는 말이지만 신나치주의처럼 외국인 근로자들을 내몰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제 어느 한 쪽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정책을 신중히 연구하여 일단 시행이 결정되면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혁세력들이 대부분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이론적으로 탁월해도 성공한 예가 거의 없는데 우리나라는 어찌하여 개혁한다는 세력들이 하나같이 미숙하고 우왕좌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믿고 또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한고조 유방(劉邦)과 같이 대역전극으로 대통령이 되셨는데 그 이후의 정책도 그 분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시기를 다시 한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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