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빈 병 구멍가에

살며시 입술을 대고

투우…

하고 입바람을 불어 넣었더니

〈중략〉

돛을 단 여객선 한 척이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를 스치면서

수평선을 따라

입술 가까이까지

물살을 튕기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김정일 '뱃고동 소리' 중

어린 시절 늘상 접하는 빈병이다.

그리고 그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투박한 특유의 저음인 소리를 곧잘 내곤 했었다.

물론 그 소리를 뱃고동 소리로 연결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따라 태극기를 펄럭이는 여객선이 입술 가까이 올라온다는 표현은 오랜 시간을 어린 학생들과 함께해 온 시인만의 독특한 시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땟물 흐르는 얼굴로 함께 놀던 친구들 생각에 한동안 하늘을 봐야만 했다.

서정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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