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람개비-오죽했으면 자살을...

'오죽했으면…'이란 말이 '유행'(?)이다.

현대 정몽헌 회장이 투신하자 대부분 "뭐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다가 끝을 맺는 말이 "오죽했으면…"이다.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가장도, 성적을 비관해 옥상에서 투신한 여고생도 모두 '오죽했으면…'이라고 공감한다.

20여년 전에 대구 수성못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헤엄을 잘 쳐 둑 건너편으로 나왔다.

주위 사람들은 '다시 시도하지는 않겠지'라고 안심을 했다고 한다.

젖은 몸으로 오전 내내 못 주변을 돌던 그는 다시 뛰어들었다.

그러기를 세 번, 사람들은 '늑대소년'을 보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익사'를 포기하고 산에 올라가 목을 맸다.

그때도 사람들은 무심하게 "오죽했으면…"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어떻게든 말려보지 그랬느냐"며 대성통곡했다.

모골이 송연한 요즘이다.

54명의 여고생이 지하철에 집단 투신자살하는 일본 영화 '자살 클럽'을 봤을 때도 지금처럼 끔찍하지는 않았다.

울며 살려달라고 매달리는데도 아파트 14층 허공에서 던져지는 공포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것도 엄마가 말이다.

'자살'이 붐을 이룬 것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두번째로 기억된다.

1990년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연일 사회면을 빼곡이 채웠다

아내는 가출하고, 전세금은 없고, 애들은 커 가는데 살 길은 막막하고, 그래서 극단적으로 자살을 택한 이들이다.

요즘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아서인지 투신보다는 극약을 마신 경우가 많았다.

수습기자로 취재에 나갔다가 상여나간 집에 애들만 소복히 있는 것이 얼마나 딱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자살'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글루미 썬데이'라는 영화다.

전세계에서 수백명을 자살하게 만든 동명의 노래로 유명하다.

자살에 대한 요즘의 관심도 때문이었던지 2년 6개월 전에 개봉했다가 올 5월 재개봉했다.

혹시 노래 속에 무슨 '암시'가 있나 싶어 수십번을 들어봤다.

빌리 할리데이, 엘비스 코스텔로, 사라 브라이트만, 시너드 오코너 등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 한국의 경우도 상실감이 컸다.

그러나 요즘의 '자살 붐'은 이 보다 더 광범위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생활고에서부터 성적비관에 연금관리공단 공무원의 자살처럼 제도적인 문제까지 자살의 원인도 다양하다.

정몽헌회장이 투신자살한 날 본지의 '이젠 재벌회장까지…'라는 기사제목은 인상적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현상이며 원인도 사회적이라고 했다.

심약한 이들이 충동을 이겨내지 못해 선택하는 '자기 파괴'가 아닌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마침내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잇따르자 빈곤층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사안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망을 깐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때는 사지 어느 것 하나 닿는 곳이 없을 때다.

의지하고 함께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절해고도가 따로 없다.

죽음 뒤의 '오죽했으면…'이란 말은 얼마나 허망한가.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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