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자들 보충수업 위해 출근길 '참변'

8일 발생한 경부선 열차 추돌사고로 희생된 2명은 모두 성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연은 너무도 안타까와 주위로 하여금 땅을 치게 했다.

(1) "아들이 열차 좌석 밑에 깔려 있어 먼저 구해 달랬더니 왜 나를 먼저 꺼냈습니까?"

다리를 크게 다쳐 경북대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정수희(29.여.성주읍)씨는 숨진 줄도 모른 채 아들 이석현(4)군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다쳐 수술 받고 있다"는 남편 말을 듣고는 그곳으로 가야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응급실에 누워서도 한손으로는 딸의 손을 꼭붙잡고 다른 손엔 두 자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움켜쥐고 있었다.

정씨는 부산 나들이를 위해 8일 오전 6시40분쯤 초교 2년생 딸(9)과 아들을 데리고 왜관역에서 사고 열차의 6호객차 11, 12번 좌석에 탔다. 그러나 준비해 간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사고가 나 정씨의 두 다리는 앞 좌석 사이에 끼였고 아들은 좌석 밑에 깔려 버렸다. 구조대원들에게 "아들을 먼저 구해달라"고 계속 부탁했지만 결국엔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게 되고 말았다고 했다.

마침 객차 뒷쪽 화장실에 가느라 화를 면하고 별다른 상해도 입지 않은 딸은 "동생이 또래보다 몸이 작고 뼈가 약해 두번이나 골절상을 입은 뒤 엄마 아빠가 '한번만 더 다치면 못걷게 된다'는 말을 자주 해 늘 동생을 보살펴 왔다"며 "사고 후 자리로 달려 갔으나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고 울었다.

딸의 휴대폰 연락을 받고 달려 왔다는 건설장비 기사인 아버지(33)도 아들의 사망 소식에 넋을 잃고는 아내에겐 알리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2) "올해는 꼭 시집 보내려 했는데--"

열차 추돌사고 또한명의 희생자인 이영경(36.여.대구 범어동)씨의 시신이 안치된 대구 성삼병원(시지동) 영안실에는 가족과 동료교사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성주 고향에서 8일 오후 늦게서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변복선(62)씨는 "한번도 속썩인 적 없는 착한 딸을 시집도 못보내고 떠나보내야 하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목을 놓았다. 아버지 이태영(70)씨는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딸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댔다. 성주군청에 근무한다는 동생 해정(33)씨는 "누나는 모든 일에 열심이고 아들 못잖게 효도했다"며 발을 굴렀다.

경남 밀양고교에서 13년째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이씨는 방학 중 보충수업을 위해 이날 아침 서둘러 대구의 자취집을 나섰다. 그러나 동대구역을 출발한지 10분도 못지나 제자들을 찾아가던 발걸음을 영원한 딴세상으로 돌려야 했다. 주위에서는 출근 시간을 줄이려고 밀양역 출구에 가장 가까운 6호 객차를 이용하느라 변을 당했다며 더 안타까와 했다.

동료 최필숙(40.여) 교사는 "성격이 쾌활하고 인품이 자상해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다"며, "차마 학생들에게 알릴 수 없어 지체하고 있다"고 눈물을 훔쳤다. 1987년 영남대에 '천마장학생'으로 입학했던 이씨는 6년째 고3을 담임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않았고, 방과 후에는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과외'까지 시킬 정도로 헌신적이었다는 것. 교회에서도 고등부 교사를 맡는 등 모범적이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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