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민주주의의 뿌리를 되살리자

오는 15일은 일제 식민치하 36년의 치욕적인 멍에와 굴레를 벗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광명을 밝힌 역사를 기념하는 광복절이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 걸고 기관마다 기념식도 경건하게 치르겠지만 그 때의 감격과 환희가 메아리칠지는 의문이다.

당시 우리 애국지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하늘 높이 외쳤을 터인데 지금 우리 앞에 투영된 정치현실은 그분들의 소망을 다 하지 못한 듯 해 죄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건국의 토대와 조국근대화에 이어 민주화에 진력하였지만 아직도 민주화의 여정은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념투쟁과 대립, 이익갈등과 혼란, 빈부의 반목과 질시 등 억장이 막히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많은데 왜 정치는 없는가 라는 푸념 속에 성숙한 자유민주주의의 참 뜻과 내용을 생각해 본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유이다.

인간을 위한 민주주의가 왜 자유를 제일 중시하고 있는가?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본능이 제대로 못 갖추어져 있기에 생각과 말 그리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이것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두고 인간은 자유 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는 바로 민주주의의 근본토대가 되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의 자치를 확보하는 것을 지도적 이념으로 하여 정치를 운행하고 있는 것이 선진국가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자유를 사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 하여 신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자유와 방종을 착각하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뒷전이며, 법은 어디 가고 힘만 난무하는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위하고, 그 행위결과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자율인간인가를 자문해 본다.

지시와 복종, 즉 권위주의에 맹종함으로써 그 안에서 안전을 구하는 타율에 젖어 있는 것이나 아닌지? 여기에서 자유에서의 도피가 생기고 독재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민주화하려면 시스템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자율하는 인간을 만들 교육이 필요한 것이나 아닌지.

다음으로 우리들 각자가 자유롭게 개인활동을 할 때 다원적으로 분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정부상태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의사가 통일되어 원활한 국민자치가 확립될 수 있는 것은 조화라는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낱낱의 것과 개개의 사람이 겉으로는 자기의 고유한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만물을 통해서 움직이는 하나의 조화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조화에 이르기 위해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토론은 소수의 의견까지도 포함하는 다수결 원칙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지나친 토론에의 몰두는 토론하다 장 파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 아니라 싸우고 다투는 장바닥 민주주의가 염려되기까지 한다.

새만금 사업, NEIS, 핵폐기물처리장과 같은 국책사업은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토론이 그 목표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근거는, 인간에게 신(神)으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통용되는 동일한 이성(理性)이 부여되어 있다는 가정이다.

'민주주의란 토론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의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곧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성은 금욕주의 정신이 존중되는 문화에서 가능한데, 오늘날 본능적인 감정과 충동이 난무하는 동물적 세계에서 그 힘이 얼마나 크게 발휘될 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도 항용 이성보다는 감성에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민주화의 전도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자율인간, 조78;조화인간, 이성인간이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당위와 이상이자 존재와 현실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출범한지 6개월을 맞는 참여정부는 국민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복지를 위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뜻을 참여(by the people)라는 구호에 담고 있어 참신해 보인다.

그러나 참여의 강조가 때로는 참여폭발로 나타났고,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정치안정은 물론 경제발전과 사회, 경제적 평등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역사적 경험도 심사숙고 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는 광복절은 국민과 공직자 모두가 자율, 조화, 이성을 갖춘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울 토대구축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제 8·15경축사에 귀기울여 보자.

김복규(계명대 교수·한국정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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