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이 프랑스의 동쪽 변방인 알자스주 스트라스부르를 찾았을 때 32℃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스트라스부르. 국경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찾아가기 위해 취재진은 버스정류장에 서있던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었다.
낯선 동양인의 질문에 당황하던 젊은이들은 대뜸 "독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가로 젓자 그들은 불어로 몇마디 나누더니 서툰 영어로 길안내를 시작했다.
자신들도 길을 잘 몰랐던지 버스정류장에 있는 지도를 찾고, 다른 사람에게 묻고 난 뒤 더듬거리는 영어로 길을 알려주었다.
취재진이 "고맙다"고 말하자 젊은이 중 한 사람이 "영어가 서툴러 미안하다.
불어나 독어는 자신있는데 영어는 어렵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들의 한마디가 바로 복잡다단한 알자스의 역사다.
중세 한자동맹에 속해 독립공화국의 지위를 누리던 알자스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에 귀속됐으며, 이후 독일과의 잦은 전쟁으로 다섯차례나 소속 국가가 바뀌는 비운의 땅이 된다.
1871년부터는 독일땅, 1918년 1차대전 종전으로 다시 프랑스, 1940년 히틀러의 침공으로 독일 영토, 1945년 2차대전 독일 패망으로 프랑스.
숱한 전쟁을 치러온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 전쟁기념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알자스의 수도인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전쟁기념상은 독특한 모습 탓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한 여인의 양쪽 팔에 나체로 쓰러진 듯 매달린 두 남자의 모습. 조국의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용맹하게 전진하는 모습이 아니라 전장에서 처참하게 스러져간 청년들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알자스개발청의 장 미셸 스트라스바흐씨는 "나체의 남자들은 바로 전쟁에 참여한 알자스의 청년들이자 비극적인 알자스의 역사를 보여준다"며 "한 가족 중에 큰 아들은 독일군으로, 둘째는 프랑스군으로, 셋째는 레지스탕스로 참여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사례가 많기 때문에 특정국가의 군복을 입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나치친위대에 강제 징집된 알자스 군인들이 다른 마을의 프랑스인들을 교회에 모아놓고 집단 학살한 사례도 있었다.
종전후 벌어진 재판에서 이들은 무죄로 석방되긴 했지만 이후로도 알자스와 다른 프랑스 지역간의 감정은 좀처럼 가실 줄 모른채 지속됐었다.
보제산맥으로 둘러싸인 알자스는 전통적으로 프랑스보다는 독일 쪽에 가까웠다.
프랑스내에서 맥주 생산이 가장 많은 지역이고, 신교도의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독일인으로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와 구텐베르크, 에라스무스가 모두 스트라스부르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공부를 한 인물들이다.
또 연방제가 발달한 독일 치하에 있으면서 사회보장제도나 지방세법 등에서도 다분히 독립적인 지위를 누려왔었다.
때문에 주민 성향도 프랑스보다 독일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2차대전 직후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90%가 넘는 지지율로 프랑스를 택했다.
악랄한 나치즘에 대한 혐오감이 컸고, 프랑스 정부의 유화정책도 주효했다.
프랑스의 영웅 드골은 1947년 공화당 창당 선언식을 스트라스부르 시청 앞에서 열어 '하나된 프랑스'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역감정이 해소되는데는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독일의 연방제 테두리에서 자치를 맛봤던 알자스인들은 지방색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때 모국어나 마찬가지이던 독일어 교육을 탄압한 것도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는 융화정책을 택했다.<
독일 사회보장제의 영향을 받은 알자스에는 별도의 의료보험체계를 적용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약 구입가격의 75%를 의료보험에서 지원하는데 비해 알자스는 90%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성직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것도 알자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제도다.
또 1991년부터 중앙정부는 주정부와의 오랜 협상 끝에 학교에서 독일어를 외국어가 아닌 지역어로 가르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프랑스 속의 독일을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어 유럽통합의 열기가 번지면서 알자스 주민들 사이엔 '유럽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자리잡았다.
스트라스부르엔 유럽의회와 유럽 5개국에서 파견된 5만 병력의 유럽방위군을 지휘하는 유럽방위군 본부, 유럽과학재단, 유럽지방의회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 독일어 사투리를 사용한다며 따돌림 당하던 알자스인들은 유럽통합의 중심에 서서 '유럽의 수도 시민'으로 자리잡았다.
프랑스는 알자스를 비롯한 22개 레지옹(Region, 주)으로 나뉘어 있다.
알자스는 22개 주 중 면적은 가장 작고 인구는 170여만명으로 16위다.
하지만 1인당 소득은 2위, 수출은 1위이며, 실업률은 프랑스에서 가장 낮다.
한때 알자스를 두고 "독일이냐, 프랑스냐"며 비꼬던 타지역 사람들도 이젠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아드리앙 젤러 알자스 주지사는 "파리가 마치 프랑스의 모든 것인양 바라보던 시대는 지났다"며 "문화와 경제 모든 것을 갖춘 알자스는 이제 프랑스인들 누구나 와서 일하고 싶어하는 희망의 땅이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젤러 주지사는 유럽통합의 시대 조류에 맞춰 중앙집권보다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집권은 반드시 지역간 불평등의 기원이 됩니다.
유럽통합이 보다 가속화되면 국경이 무의미해지고, 지방대 지방간 경쟁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덩치만 큰 중앙정부로선 이런 급변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힘들죠. 지역의 특색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지역간 경쟁을 북돋우려면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취재팀=서종철·김태형·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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