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틈에 나이 쉰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아이처럼 길 가다가 엎어져 무릎을 깬다.
한눈을 팔다가, 곧잘 헛발을 딛고 나동그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몸과 마음속엔 크고 작은 멍들이 많이 박혀있다.
그 통증을 달래려고, 시 쓰고 그림 그리며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내 고향은 예술이다' 라는 책 한 권을 읽고 행복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자아라는 존재의 한 방울을 우주에 던져 놓고 사는' 화가 한 분과 깊이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0년대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건너가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혼자 뒤늦게 시작한 그림으로 유명 화가가 되고, 독일 함부르크 국립 미술대학의 교수가 된 여성이다.
'내 고향은 예술이다' 에는 그의 삶과 예술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한, 그림에 대한, 창작하는 태도에 대한 중요한 비밀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다.
그 책 속에는 ' 쓰레기통 공부' 라는 진솔하고 재미난 글도 있다.
뒤늦게 이국의 미술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수업 첫 날, 미술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몰라, 교수에게 그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는 웃으면서 "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공부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싶어 고민하던 어느 날, 그는 새를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어 몽땅 휴지통에 쑤셔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오니 휴지통에 버렸던 그림들이 모두 책상 위에 놓여있었고, 교수는 신이 난 듯 " 바로 이렇게 그리는 거다" 라고 말했다.
점잖은 교수님이 쓰레기통을 뒤져 굳이 버린 그림을 칭찬하시다니….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는 그는, 그러나, 그 때부터 남들이 하는 미술공부를 따라 하지 않고, 쓰레기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많은 쓰레기통을 채웠다가 다시 비우고,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며 몇 년을 보냈고, 마침내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물론 가는 곳마다 화가도 많고 시인도 많다.
화가지망생도 많고 문학도도 많다
그러나 예술은 그리 쉽게 손대고, 쉽게 빠져 나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롭지만 진실과 엄격함의 지시를 받는 무거운 것이다.
그런 예술을, 행복하게 껴안고 사는 이의 외로운 기록 '내 고향은 예술이다'를 읽다가, 나는 잠시 매미 울음소리 따갑게 지나가는 여름 하늘을 올려다본다.
백미혜(대구가톨릭대 미술대 서양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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