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한 마디로 실망스런 내용이다.
국민의 희망을 북돋우는 국정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라, 국민의 냉소와 걱정거리만 만든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대통령이 경축사를 직접 집필하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께름칙한 뒷맛을 남긴다.
민족장래를 좌우할 국가 대계를 전문가 집단의 다양한 참여 없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짓는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한 사람 또는 일부 소수의 지식과 경험으로 복잡다단한 국제 및 국내 환경에 대처한다는 것은 엄청난 오판이나 시행착오를 부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경축사의 두 가지 핵심은 자주국방과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토대 구축이었다.
국가경제가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파탄지경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2만 달러를 운위한 것은 말의 선후가 뒤바뀐 느낌이다.
일부 원론적 언급이 있었지만 노사안정과 기업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현실성 있는 정책제시가 선행됐어야 했다.
그런 처방 없이 2만 달러를 내세운 것은 굶고 있는 사람에게 10년 뒤의 생일 잔칫상을 차려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10년 내 자주국방'과 그와 연관된 '미군 재배치 수용' 등도 너무 성급하고, 준비가 부족하며,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안보증강은 경제력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최근 분석한 자주국방 전력 증강 비용은 20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예산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국민총생산 대비 3.2%(현재 2.7%)로 늘려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이 시대를 뛰어넘는 지향 목표임에는 틀림없지만, 국방비 증액이란 현실을 무시하고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전 세계가 집단 안보체제로 가고 있는 마당에 자주 국방만을 최선의 대책으로 내세운 것도 책략의 부족으로 비쳐질 수 있다.
설사 10년 이내에 자주국방이 달성된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처지다.
정부 예산의 경제부문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미국의 안보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
역대 정권들이 미국에 눈치를 본 것도 그런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북한 핵 사태가 종료되지 않은 미묘한 시점에서 이런 언급들이 쏟아진 것은 국가대계에 대한 고민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 지적하고 싶다.
"언제까지 안보를 미군에 의존할 수 없다"는 언급은 북한의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자주국방이 완성된 뒤에 나왔어야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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