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대가야(6)-베일속 고도 기술

경북 포항시 도구동 해병대 영내에 있는 연못, '일월지(日月池)'. 삼한시대 인근 바닷가의 사철(砂鐵)을 이용해 철기를 제작, 한반도 각 지역과 왜에 교역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삼국유사'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약 2천년이 지난 1968년 4월, 바로 그 주변에 '제철보국'을 기치로 내건 포항종합제철이 우뚝 섰다.

이영희(72·여) 포스코 인재개발연구원 교수는 "일월지와 연오랑세오녀에 나오는 '해와 달'은 모두 제철을 뜻한다"며 "지금의 포스코가 삼한시대 제철지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되새겨 볼 만한 점이다"고 말했다.

지난 80년 초, 경북 고령군 고령읍 지산동 32~35호 고분 유물의 보존·복원처리를 하던 이오희(55·당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전문위원) 호암미술관 문화재보존연구소장은 경악했다.

흙과 녹으로 뒤덮여 원형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고리자루 큰 칼( 頭大刀)에서 은으로 상감한 문양을 발견한 것이다.

대가야 철의 '상감기법'이 X선 촬영을 통해 최초로 확인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당초문(唐草文)이 새겨진 그 오묘한 상감기법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칼은 400년대 초를 전후해 축조됐던 32호 인근 돌널무덤(32NE-1)에서 나왔다.

이후 경남 합천군 쌍책면 옥전고분군에서는 이같은 기법을 적용한 큰 칼이 5자루나 나와 눈길을 모았다.

이 소장은 "국내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고대 상감유물은 30여점에 불과하다"며 "대가야시대 철 상감 및 합금기법 등 비밀을 캐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가야 전신, 반로국의 국읍지였던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 일대에는 와질토기와 함께 도끼, 낫 등 일부 철기가 나왔다

위만조선 유이민세력 또는 경남 해안세력으로부터 전해진 철기로 추정되고 있다.

대가야 지역에 첫선을 보인 철이다.

이후 300년대 말, 400년대 초 축조된 고령읍 쾌빈동 고분 1호에서는 화살촉, 칼, 낫, 정, 꺽쇠, 철제 고리, 모형 도끼와 괭이 등 철제품 32점이 쏟아졌다.

300년대 가라국에 이미 철기 제작집단이 형성됐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400년대 전반기 무덤인 고령읍 지산동 32호에서는 갑옷 1벌과 투구 2개가 처음으로 출토됐다.

또 32호를 비롯해 33호, 35호 무덤에서는 말 안장, 재갈, 등자, 장신구 등 마구류가 쏟아졌다.

이 때부터 피와 정복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고령, 합천 등 대가야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온 갑옷은 가야지역에서 모두 70여벌만 나왔지만 이는 한반도 전체에서 출토된 철 갑옷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수십 개의 철판조각을 오려서 만들고, 주물을 통해 만든 80여개의 못으로 철판을 연결하고, 곡면을 구부려 두드리는 등 그 정교한 기술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자못 경이로울 따름이다.

특히 철판 두께를 1mm 이하로 가볍게 만들었으며 모양도 삼각형, 사각형, 장방형 등 다채롭다.

철제 갑옷과 투구, 말을 통한 정복의 역사는 고령 지산동 45호를 거쳐 44호 고분 세력에 이르러 절정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가야의 철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체로 철 소재를 망치 등으로 두드려 형태를 만드는 과정, 제철로에서 달군 숯 속에 소재를 꽂아 탄소를 주입하는 과정, 담금질을 통한 열처리 과정 등을 거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단조에 의한 형태가공-표면침탄법을 통한 제강공정-열처리 등 3단계로 제작됐다는 것. 이같은 방식은 신라의 철기 기술체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제강공정을 먼저 거친 뒤 형태를 가공하는 백제 방식과는 정반대의 공정이다.

지난 2001년 가야 철기유물을 분석한 박장식 홍익대(금속공학) 교수는 "가야는 전통적 로마식 기술체계를 따르는 반면, 백제는 중국식 기술체계를 도입했다"며 "지역별 철기 기술체계를 알기 위해서는 철에 탄소를 주입하는 제강공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공예가인 최광웅(62·경북 경주 동방동)씨는 "가야시대에 이미 낫, 칼을 만드는 기술에서 나아가 상감기법을 활용하고 갑옷과 투구, 금관까지 만들어낸 고도의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당시 별다른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교한 기술을 익혔는지 신비롭다"고 덧붙였다.

철기 생산에는 철광석 원료, 나무와 숯 등 연료, 점토 등으로 축조한 제철로, 제련 및 제강기술 등이 필수적인 요소. 손명조(40) 공주박물관장은 "철광석중 철 함유량이 70% 이상 돼야 철을 뽑을 수 있다"며 "당시 철광석을 찾는 과정과 철을 뽑는 제련기술, 탄소함유량을 맞추는 제강기술 등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인 대가야의 제철 기술. 여태 철 생산유적이나 제련로가 명확하게 밝혀진 적도 없다.

그러나 문헌 기록이나 유물로 추정할 때 대가야의 제철 유적으로는 합천군 야로면을 꼽을 수 있다.

미숭산을 중심으로 야로면 금평, 돈평마을 인근에 철광과 제철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주변에 조선시대 '제철로'와 삼국시대 토기조각 등이 나오고 문헌에도 상당량의 철을 생산한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합천 옥전고분에서도 철을 단조한 공구들이 다량 출토돼 인근에 제철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야시대 제철의 역사는 흘러흘러 포스코에 와 닿아 있었다.

높이가 100m가 넘는 거대한 제련로. 바람을 불어넣는 송풍구의 열기는 1천100℃를 넘나들었고, 노 안에서는 최고 2천400℃의 열에 철광석이 여지없이 녹아내렸다.

이 쇳물은 다시 열차에 실려 제강공장으로 옮겨진 뒤 크레인을 통해 '전로(轉爐)'속으로 들어가 강철로 바뀌었다.

이 강철은 열연공장에서 크기와 두께가 맞춰진 철판으로 거듭났다.

72년 1개의 열연공장으로 출발한 포스코는 이제 5개의 고로(제련로), 2개의 제강공장, 2개의 열연공장 등 대규모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29년동안 포스코에 몸담고 있는 정주태(53) 제선부 과장은 "철광석과 일반탄을 사전 가공공정없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 '파이넥스 데모플랜트'를 지난 5월 준공했다"고 말했다.

기존 공법에 비해 원가를 15%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황산화물 등 오염물질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최첨단 설비라는 것

지난 5월 문을 연 포스코 역사관. 입구에 당당히 버티고 있는 삼국시대 철제솥과 가야시대 갑옷, 투구는 1700여년전 제철 선조와 포스코의 후예를 끈끈하게 잇고 있었다.

이남규 한신대(국사학) 교수는 "대가야 철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초보단계"라며 "사학-금속공학계 등이 공동 연구를 통해 철광산지, 제련·제강 기술체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신라와 일본 철 기술과의 관계, 철 기술의 발전단계 등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김인탁(고령)기자 kit@imaeil.com

사진·안상호기자 shah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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