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여유와 휴식을 즐기며

나는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나무 한 그루, 맑은 하늘 한번 올려다 볼 여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나마 운전대를 잡으면 느긋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선 건물을 바라보고 신호등에 멈추어 서있을 때는 간혹 하늘도 올려다 본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데 차에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여유를 주는 것일까? 그리 보면 나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편해 하는, 약간의 정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빠름'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빨리 정보를 얻고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적응해 나가길 사회는 재촉한다.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도 빨리 잊혀지고 점점 더 그 강도가 강해지는 걸 무감각하게 견뎌나간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얼마 전 타계하신 박동진 선생은 느린 호흡을 강조했다.

느리고 천천히 내쉬는 호흡은 국악에서도, 서양 음악에서도,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택견에서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하루에 30분, 아니 10분간만이라도 머리를 비워둔 채 길고도 느린 호흡을 하자. 그리고, 천천히 거리를 걸어보자. 그렇게 잠시 모든 걸 놓고 그냥 쉬어보자.

우리 선조들은 여유의 미학을 즐길줄 아는 민족이었다.

느릿한 걸음걸이며 한복을 입은 여인네의 폭 넓은 치맛자락에서도 우리는 여유를 찾아 볼 수 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다.

우리 휴식하는 데 인색하지 말자.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어느덧 얇아진 햇살의 두께와 가벼워진 바람은 가을이 앞에서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마음이 넓어지고 푸근한 풍요로움을 주는 계절, 가을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이제 한번 숨을 돌리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천천히, 느리게 여유를 가지고 음미해보자.

이인철 성악가·바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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