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六堂의 옥중 시조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떨리는 목소리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을 때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들과 수많은 국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디에 감춰 두었는지 알 수 없는 태극기의 물결이 새 하늘에 힘차게 펄럭였다.

하지만 이 때 친일파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믿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을는지 모른다.

한 순간에 세상이 뒤바뀌어 사형·장기구금·재산 몰수 등으로 구체화될 민족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들의 공포가 안도의 한숨으로 뒤집히는 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광복 직후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들은 서둘러 반성문을 쓰기도 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반공과 효용성을 내세워 이들을 다시 등용했다.

1948년 국회가 개원하면서 설치된 '반민특위'마저 우여곡절 끝에 문을 닫았다.

이 땅은 다시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생겨나는 가치관의 혼돈이 난무하게 되지 않았던가.

▲지난해 광복절을 즈음해 민족문학작가회의·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친일 선배 문인들을 대신해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친일 문학에 대한 자성'이라는 모임을 가졌었다.

이 때 공개된 친일 문인은 시인 김동환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최남선 등 12명, 소설·수필·희곡 부문의 김동인 김소운 유치진 이광수 채만식 등 19명, 평론가 곽종원 김기진 백철 이헌구 등 11명(모두 42명)에 이르렀다.

▲사실 이들 가운데 김동인·서정주·김기진·최남선 등은 각각 동인문학상·미당문학상·팔봉문학상·육당시조문학상 등으로 지금까지 추앙 받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작품이 국정교과서에 아직도 버젓이 실려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한쪽에서 친일파로 규정해 성토하고 있는 문인들을 한쪽에서는 우리 문학의 상징쯤으로 떠받들고 있는 셈이지만, 이는 분명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요, 기막히는 자기모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근 육당 최남선의 미발표 옥중 시조 36수가 공개되면서 기미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자 친일행위로 반민특위법에 걸려 옥고를 치렀던 그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그는 천하를 향해 죄인으로 반성하는 자열서를 썼고 옥중 시조를 남겼으나 과연 매국자인가, 애국자였던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민족에 대한 죄의식은 법을 넘어선다는 것, 독립선언문을 쓴 그의 심사였으리라'고 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그에 대한 비난과 당시로선 어쩔 수 없었다는 동정론 사이에 어떤 접점이 생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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