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행길에 다져지는 이웃사촌 한마음"

지난해 7월 결성된 대구 정암(廷岩)산악회(회장 김탁)는 이웃사촌인 한동네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모두 남구 대명11동에 살고 있다.

대구시가지를 굽어 보고 있는 앞산 바로 밑 마을인 대명11동은 서부정류장과 관문시장, 승마장이 있는 동네. 회원들은 모두 이곳에서 적게는 5년, 10년에서 많게는 20년, 30년 이상을 거주해오며 고향 이상으로 정든 곳이다.

앞산이 바로 곁에 있어 시간만 나면 앞산을 오르내리며 지냈던 주민들이 산악회를 결성하게 된 동기는 간단하다.

한마을에서 서로 얼굴도 모르고 지내지 말고 서로 인사도 하고 인정 있게 지내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 모아진게 계기. 산을 좋아하는 동네사람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심전심으로 취지가 전달되면서 어느날 마을주민 30명이 모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산악회가 결성됐다.

김탁(58) 회장과 임용선(48) 부회장, 운영위원인 김용임(53)씨 등이 중심이 돼 발족한 정암산악회는 창립당시 30명이던 정회원 숫자가 지금은 80명으로 불어났을 정도로 산악회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다.

대부분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고 있다는 점도 산악회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됐다.

가입비 2만원과 월 1만원씩의 회비를 내는 정회원과 달리 산행 때마다 1만원씩의 당일 경비를 내고 참여하는 비회원도 30명에 이른다.

30대, 40대, 50대로 구성된 남녀회원들은 매월 둘째 화요일이면 산행을 나선다.

다른 산악회와 달리 평일에 떠날 수 있는 것은 주부회원과 자영업을 하는 회원들이 많기 때문.

회원들은 그동안 대구, 경북일대는 물론 지리산, 구봉산, 치악산 등 경남, 강원, 호남 등지의 이름난 산들의 정상을 밟고 돌아왔다.

등산코스 선정은 등반대장의 몫이지만 회비를 아끼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 가급적 입장료가 없는 곳을 택하고 나이 많은 회원들의 연령을 감안, 왕복 4시간이 넘지 않는 곳으로 떠난다.

대부분 꾸준히 등산을 해온탓에 힘들이지 않고 정상을 오르지만 등산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회원들은 중간에 쉬거나 반쯤에서 경치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원들은 오고가는 관광버스안과 산행길에 서로 어울려 떠들며 대화하다보니 이제 친구가 되고 언니가 되고 여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정도로 친밀감이 쌓였다고 한다.

정기산행의 출발시간은 오전 8시이며 오후 7시나 8시에 돌아와 곧바로 해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뒤풀이 등으로 귀가시간이 늦거나 하는 일은 없다.

회원들은 등산을 통해 건강을 다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간에 인정도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심임조(52)씨는 "산만 타지않고 산행과정에 서로 생활과 가정이야기, 가볼만한 다른 산 이야기 등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훌훌 날아가 버리다"고 자랑했다.

김성애(38)씨는 "회원으로 활동한 뒤 집밖으로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람들이어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용선 부회장도 "서로 친해져서 시장이든 어디든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니까 기쁜데다가 회원들의 가게를 이용해주며 서로 상부상조 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덧붙였다.

산악회으로 인해 한동네에 수십년간 살면서도 그저 모르고 지낼 뻔하던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람들이 친해지고 길흉사를 챙겨주는 돈독한 이웃으로 변한게 제일 고맙단다.

회원들은 금년 6월 경주시 산내면 한목장에서 지역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와 효도관광 행사를 했다

등산만 할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회원들의 뜻이 모아져 이루어진, 노인들을 경주로 모시고 가 벌인 경로잔치는 회원들의 단합과 열성을 확인한 행사였다.

행사에는 동사무소를 통해 선별한 관내에 살고 있는 홀몸노인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노인 110여명이 참석해 회원들도 감짝놀랄 만큼의 성황을 이루었다.

70여명의 회원들은 출발 하루전날 밤잠을 설쳐 가면서 음식을 준비했으며 하루만은 노인들의 아들, 딸이 되어준다는 심정으로 봉사했다.

직접 현장에서 밥과 국을 만들어 대접한데 이어 풍물패공연과 노래자랑으로 외롭게 지내던 노인들이 이날 하루만은 회원들과 어울려 흥겨움과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자리가 되었다.

돌아갈때는 자영업을 하는 회원들의 찬조품과 산악회에서 마련한 손가방과 생활필수품, 수건도 전달했다.

행사에 소요된 경비 400여만원은 모두 회원들의 주머니돈으로 충당한 것은 물론이다.

새마을 부녀회원과 지체장애인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용임 운영위원은 "지금까지 여러행사를 준비해 보았지만 이렇게 신경을 많이 쓴 행사는 드문 것으로 기억한다"며 회원들이 정말 자기일 처럼 발벗고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김명숙(48)씨도 나도 이렇게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기뻤다고 되돌아 봤다.

회원들은 경로잔치를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산악회의 주요 연례행사로 지정, 해마다 개최하기로 마음먹고있다.

회원들은 며칠전 앞산에 모여 김탁 회장이 준비해온 돼지수육으로 파티를 열었다.

회원들은 이처럼 누가 먼저랄것 없이 맛있는 음식을 한턱내 회원들이 자주 자리를 같이 한다.

김탁 회장은 "회원들 모두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정도로 유대가 너무 잘되는게 탈"이라며 "도시에 살고 있지만 시골동네 같은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암 산악회"라고 자랑했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