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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교육섹션 어떤 길 택할까-직업의 세계(큐레이터)

오늘날의 미술관은 단순한 예술 작품의 전시공간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미술관은 예술 작품의 전시.보존과 예술 전반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배급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맡는 것이 큐레이터(curator)다.

전시장 한켠을 지키며 전시회를 기획하고 전시관과 작가, 관람객을 연결시켜 주는 문화 선도자인 셈. 하나의 '전시'가 탄생하기 위해 큐레이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다.

아이디어 구상에서 작가선정, 섭외, 홍보, 디스플레이, 오프닝 행사까지를 총체적으로 책임진다.

하지만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사랑 없이는 버텨내기 힘든 직업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미술품을 다루는 고상하고 우아한 직업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뛰어다녀야 하는 역동적인 직업입니다.

그야말로 물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백조죠".

갤러리M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남인숙(38.여)씨. 어려운 미술 작품을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는 것은 큐레이터의 손길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무거운 액자를 들고 뛰어다니거나 높은 사다리에 올라 조명을 다는 수고로움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렇다할 교본이 없는 만큼 많은 경험과 함께 창의성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큐레이터 역할은 예술의 흐름을 앞장서서 이끄는 것입니다.

흐름을 붙잡기 위해 국내외 전시회를 찾아다니고, 작가들의 작품경향을 꼼꼼히 메모하는 것은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죠".

미술계 동향을 파악하려면 미술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야하고 국제화에 맞게 어학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창조력과 기획, 디스플레이, 홍보물 제작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추진력은 큐레이터에게 필수적이다.

사교성도 요구된다.

공들여 전시회를 열었다 하더라도 '왜 이 작가를 선정했냐, 개인적 친분이라도 있는 거냐' 등 윽박지르고 헐뜯는 소리를 들으면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시한 작품에 넋을 잃고 감상하는 관객을 만나거나 "가슴에 와 닿는 전시회였다"는 관객의 말 한마디는 새로운 의지를 북돋게 한다고 했다.

큐레이터는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직종인데다 영화나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심심찮게 등장해, 화려하고 우아한 전문직을 꿈꾸는 여대생들에게 인기 있는 직종이다.

그러나 정작 현업의 그들은 '고학력 막일꾼'이라는 자조섞인 말을 한다.

전시기획 담당부터 디자인 캡션 담당까지 세분화돼 있는 외국과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자질구레한 잡무까지 해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전국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근무하는 큐레이터는 대략 700~8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전시 기획'을 하는 전문 큐레이터는 대구의 경우 10명 내외에 불과하고 전국적으로도 200~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는 서너 평 짜리 화랑에 소속돼 작품을 팔거나 찾아온 고객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일 등에 얽매여 있는 것이 현주소다.

관장의 취향에 따라 전시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아예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보수를 비롯한 복지 혜택도 열악하다.

큐레이터는 석사 학위를 가졌거나 외국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공이나 학력은 제한이 없지만 미술사나 미학을 전공하는 편이 유리하다.

국내에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전문 기관은 따로 없다.

대구가톨릭대, 동덕여대, 경기대, 조선대, 한서대 등 몇몇 대학만이 큐레이터학과 또는 그와 유사한 학과 및 관련 전공을 개설하고 있을 뿐이다.

큐레이터는 학문적인 지식과 비평가적인 안목 외에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걸쳐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미술계 동향 파악, 작가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외국어 실력도 있어야 한다.

대구시 문화예술과 박우찬(큐레이터)씨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예술적 성취감, 직업에 대한 자기만족과 함께 미술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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