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Viva! 대구-코리아를 누른 코리안 감독

지난 2000년 이탈리아로 훌쩍 떠난 한 태권도인이 옛 로마군단의 병사처럼 침착한 승부사를 데리고 모국을 찾아왔다.

열정적인 한국인 스승 밑에서 단련된 갈색 눈의 제자는 태권도 종주국의 우승 후보를 제치고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벌인 끝에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첫 금메달의 감격을 맛봤다.

이탈리아 태권도대표팀 윤순철(37)감독과 카를로 몰페타(19). 그들은 한 몸이 되어 고향 대구에서 금메달을 꿈꾸던 조바로(19·경희대)의 관문을 통과해 정상을 밟았다.

22일 남자태권도 72㎏급 예선 2회전에서 만난 몰페타와 조바로의 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자신감에 넘치는 조바로는 활발한 움직임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으며 몰페타는 움직임을 자제하는 대신 침착한 자세로 임하다 빠르고 기습적인 공격으로 맞섰다.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겨놓고 12대12로 팽팽한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는 순간 몰페타의 기습적인 양발 차기가 조바로의 몸에 적중했다.

조바로를 이기자 금메달을 예감한 윤 감독의 기대대로 몰페타는 승승장구, 최종 목적지에 다다랐다.

윤 감독은 대학 후배인 조바로에게 미안했지만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피부색이 다른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했다.

80년대말과 90년대 초 한국 대표로 맹활약했던 윤 감독은 3년전 이탈리아대표팀 감독이 돼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국을 떠났다.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생했지만 그는 이탈리아 선수들과 부대끼며 자리를 잡아갔다.

10개월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를 준비하면서 몰페타를 만난 윤 감독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큰 형처럼 그를 지도했다.

이날 시합 도중 그는 몰페타의 양발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리고 근육을 풀어주는가 하면 발가락 사이사이에 스프레이를 뿌려주면서 격려했다.

몰페타는 경기 내내 윤 감독의 지시에 잘 따랐고 금메달이 확정된 후 감독과 얼싸안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이탈리아 대표선수들은 칼로의 금메달이 확정된 뒤 윤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도 쳤다.

몰페타는 "윤 감독과 같이 생활하면서 발차기 기술도 많이 배웠지만 무엇보다 태권도 정신을 배웠고, '한국 선수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의 지도로 성장한 몰페타는 라이트급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그는 2001 세계 선수권대회, 2002년 동경월드컵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까지 노리고 있다.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지만 특히 양발 돌려차기가 주특기인 몰페타는 차분하게 경기를 주도하며 상대가 허점을 보이면 여지없이 득점으로 연결시킨다.

윤 감독은 "한국 태권도가 종주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신장과 파워를 겸비한 외국 선수들이 한국의 다이내믹한 기술과 전략을 간파하면서 한국선수 위주의 판도가 당장 다음 올림픽부터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U대회에 남자 5체급, 여자 2체급 대표선수들을 이끌고 출전, 금메달 2, 동메달 1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윤 감독은 앞으로도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면서 끊임없이 종주국 한국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