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물연대파업 르포

"물류는 마비됐지만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렵다는 말을 왜 합니까. 괜히 출하량이 줄었다고 말하면 주가와 주문량만 떨어지지 않겠습니까"-포항공단 모업체 물류담당 과장 ㄱ씨.

"이젠 아무런 기대도 없습니다.

파업하려면 파업하고, 정부도 노동자 편만 들라고 하십시오. 회사 문닫고 땅팔아 편하게 살지 제조업 왜 하겠습니까"-중소기업 대표 ㅂ씨.

"내 돈으로 산 내 차인데 소유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실상 노동자인데 노동자 취급도 못받고, 차 투자하고 내 손으로 짐 싣고 가봤자 기름값 겨우 건지는데…. 운전이고 뭐고 다 때려 치워버리면 되잖겠습니까"-화물연대 지입차주 ㄱ씨.

포항공단이 지난 5월에 이어 재차 물류대란 사태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화주도, 운송업체 관계자도, 화물연대 조합원도, 관계 구성원 모두가 반어법(反語法)까지 써 가며 '죽겠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사태를 두고 모두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22일 오후 3시쯤. 포항공단을 빠져나와 대구.구미.김천 등 경북지역으로 가는 화물차들이 반드시 들르는 코스인 경주시 안강읍 국도 28호선에 있는 과적차량 검문소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곳 근무자는 "이 시간대가 가장 통행량이 많을 때인데 어제(21일) 파업에 들어가면서 종전의 4분의1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실제로 평소 계근대에 올리는 차량은 하루 2천600대 가량이지만 21.22일 양일간은 각 600대 가량에 불과했다.

검문소 건물 옆에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정상 운행하는 비조합원 및 자차 차량 기사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비파업 기사들은 이들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철근 수송 운전자 윤모(39)씨는 "평소 같으면 반갑게 수인사를 하는 사이지만 파업사태가 우리들을 이렇게 갈라 놓았다"고 했다.

이에 앞선 오전 11시쯤. 공단내 한 대기업 수송담당 김모 과장은 한손에 안전모를 들고 지친 모습으로 사내 나무그늘에 앉아 있었다.

목이 꽉 잠겨 있었다.

"차량과 기사들 불러들여 보려고 핸드폰으로 하루 내내 악을 써댔더니 목소리가 이렇게 돼 버렸네요. 참 못해먹을 노릇입니다.

남의 말 하듯 한마디를 내뱉은 김 과장은 "될대로 되겠지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중소기업 대표 ㅂ씨는 이날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주무업체에서는 몇번씩이나 '납기 어기면 계속 거래하기 어렵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차는 들어오지 않고…"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확 엎어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건교부.노동부.경찰 어느 한 곳도 믿지 못하겠다며 '할 수 있다면 세금반환 청구소송이라도 내고 싶다'고 했다.

차를 세우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감수하고 있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불만도 도를 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쯤 만난, 경주시 안강읍 구석진 곳에 차를 세워두었다는 화물연대 소속 김모(40)씨는 "서 있는 시간 만큼 수익도 줄고 당장 차량구입 대출금 이자도 걱정이지만 세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정부와 화주.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내 돈주고 산 차인데도 재산권 행사를 제한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알선업자 눈 밖에 나면 물량배정에서 차별대우 받고…"라며 "자신도 모르는 빚에 떠밀려 이곳저곳에 팔려 다니는 윤락녀 신세만큼이나 현행 물류제도도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날 배정된 물량을 30% 가량밖에 처리하지 못한 운송업체 대표 ㄱ씨도 할말은 많았다.

ㄱ씨는 우선, "이번 사태는 말이 안된다"고 했다.

대정부 협상은 정부와 해결할 문제이고 BCT(벌크.시멘트.트레일러)는 관계자들끼리 협상할 문제인데 일반 화물을 세우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이들이 이처럼 서로에게 이유를 돌리며 손가락질하는 사이 물류수송은 더욱 줄었다.

각종 철강제를 실은 트럭이 끝없이 꼬리를 물었던 포항공단과 외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연결도로인 포항 섬안큰다리는 승용차 전용도로를 연상케 할 정도로 통행량이 줄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이 출하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 산업의 마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더 혼란을 겪고서야 제자리를 찾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이런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제2의 물류대란 이틀째를 지켜본 포항공단 한 업체 김모 사장은 "처분할 수만 있다면 정말 회사 정리하고 싶다"는 말을 몇번이나 되풀이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김 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욱 늘 것이라는 점에서 '기업하기 힘든 나라, 한국'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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