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빼앗긴 목소리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재로 변한 땅, 아프가니스탄을 그린 아티크 라히미의 소설 '흙과 재'에서 어린 손자 야씬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는 왜 목소리를 그냥 가져 가게 내버려 두었어요?" 폭격의 굉음 때문에 귀가 먼 아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침략자들이 모두 빼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모두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을 야씬의 착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확인되지도 않은 '대량 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해 한달여 만에 2천여명의 무고한 시민(그중 아이들이 8백명이 넘는다)을 살해한 미국의 만행에 대해 '국제사회'는 지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목소리를 빼앗긴 것은 아닌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한 침공 같은 미국의 일방적 폭력은 "미국식의 생활양식과 가치를 지키고 확산시키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고 저들은 말한다.

미국은 이제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는 '제국'임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미국식 생활양식'을 누리고 그 '가치'에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20%가 지구상의 자원 및 에너지 80%를 소비하는 이 불공정한 체제 속에서, 우리는 이미 착취하는 20%에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 일본과 함께 이라크침공 대열의 꽁무니에, 남에게 질세라 따라 붙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일본의 평화학자 토다 키요시 씨는 한·일(韓日) 동시출간된 새 책 '환경학과 평화학'에서, 전쟁과 같은 '직접적 폭력'은 물론, 자원과 에너지의 불균등한 분배, 기아와 빈곤 같은 사회적·환경적 불공정(구조적 폭력)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결코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평화를 해치는 '불량배 국가' 미국의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우리의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아 미국의 횡포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20%'에서 빠져 나와, 세계의 민중과 고르게 나눔으로써 진정한 평화로 나아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변홍철 녹색평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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