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이 만화 어떻게 고를까

만화 붐이다.

코믹이나 액션 같은 전통적인 장르는 물론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만화, 신화, 역사 등 이른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만화가 출간되고 있다.

'캔디, 빨강머리 앤, 로봇 태권V…' 같은 만화에 웃고울며 어린 시절을 보낸 부모들이라도 요즘 같으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만화를 골라줘야 할지, 어떻게 읽혀야 할지, 차라리 못 보게 해야 할지. 하지만 만화는 보통 책들과 달리 아이들의 시선을 빠르게 집중시킨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한층 친숙함을 줄 수 있다.

자녀의 연령대와 관심사를 고려해 '좋은 만화'를 고르면 부모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만화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지난 27일 오후 4시쯤 대구 중구의 한 서점. 북적대는 진열대 한 쪽에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손에손에 책을 들고 몰려앉아 있었다.

침을 꼴깍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는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다가가 보니 20여명의 어린이 모두가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바로 앞 진열대는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만화를 비롯해 영어.레저.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만화로 채워져 있었다.

교보문고 전길채씨는 "기획력이 돋보인 몇몇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출판가에 만화 붐이 일고 있다"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 여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의 작품들도 상당수 나오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만화를 찾는 것은 딱딱한 글만 있는 책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데다 등장인물의 갖가지 표정, 이야기 장면들이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 김정훈(11)군은 "만화를 읽으면 머리 속에 오래 남는다"며 "지루하지도 않아 하루에 몇 권씩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 딸의 책을 고르러 왔다는 김은주(35.대구 대봉동)씨는 "좋은 책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라며 "내용만 충실하다면 만화는 책 읽기를 친숙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만화 읽기의 양면성

그리스 로마신화, 가시고기, 먼나라 이웃나라, 삼국지 등 서점가에는 올초부터 아동용 만화 붐이 게세게 일고 있다.

이는 한 출판사의 '그리스 로마신화'가 350만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가속화됐다.

기획력이 돋보였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의 경우 화가 아버지와 호기심 많은 자녀들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풀어 써 어른조차 어려워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히트를 친 비결이라고 서점 관계자는 분석했다.

최근 들어서는 원작 소설을 만화로 각색하거나 동화처럼 삽화를 그려 넣는 형태, 기승전결이나 선악 구분을 파괴하는 내용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부모들도 이젠 자녀들의 만화 보기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효과도 있다 보니 책 안 읽는 아이에게 만화를 사 주며 적극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다뤘다고 해도 만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대구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정수경씨는 "만화를 읽으면서 머리 속에 상황을 그려가는 사고 활동, 상상력의 성장을 막을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대충 읽어도 다 읽은 듯한 느낌을 줘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그릇된 독서 자세를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만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잔혹한 장면 등을 그대로 그린 충동적이고 거친 내용의 만화를 읽을 경우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부모와 함께 읽는 만화

만화에 빠진 아이들에게 '보지 마라', '책 읽어라', '공부 해라'며 통제하고 간섭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가 함께 책을 고르고 독서 전, 독서 후 활동을 유도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미만 좇다가 사실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야기 구성이나 그림의 완결성은 어느 정도인지, 기획력은 뛰어난지 등을 부모가 미리 살펴보거나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만화는 집에서 아무리 보지 못하게 해도 인터넷이나 만화방 등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의 울타리로 끌어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만화들이 왜 나쁜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대화를 통해 이해시키고 스스로 피하도록 지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만화가 이공명씨는 "우리나라의 만화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만화에 대한 인식은 옹색한 편"이라며 "올바른 사고력을 길러주고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면서 부작용도 막으려면 부모가 적극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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