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낮 중국팀과 일본의 U대회 여자축구 경기가 열린 대구 수성구민운동장 관중석 한 편. 언뜻 봐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뙤약볕도 아랑곳 않고 경기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꼿꼿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기장에 펄럭이는 일장기를 감회 어려 바라보던 그는 광복군 출신 권준호(81.대구 성내1동) 할아버지. 자신에겐 일장기가 눈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무엇이라고 했다.
"내일(29일)이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야. 요즘 젊은이들 중에 93년 전 우리가 나라를 잃었음을 잊지 않고 이날을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 모두들 휴일인 광복절만 생각하지. 그러나 우리가 정작 더 뼛속 깊이 새겨야 하는 날은 바로 이 국치일이야. 중국인들은 그런 아픔의 날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며 '영세불망'(永世不忘)이란 비석을 세우지. 그 정신을 잃고 있으니 나라가 이렇게 혼란을 거듭하는 것 아닌가? 오늘은 93년 전 우리에게 죽음을 덮어 씌웠던 일본의 운동경기나마 내 하늘 아래서 보려고 나왔어".
안동 출신인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살던 중 20대 초반 나이이던 1944년에 일제(日帝) 징용 1기로 중국 후난성으로 끌려 갔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군에서 기초훈련 과정을 마치자마자 탈출, 그곳에서 활동 중이던 광복군에 투신해 현지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하다 역시 그곳에서 광복을 맞았다.
그리고 근 60년.
"우리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포터스가 일장기를 흔들며 열심히 일본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젊은 세대의 넓은 포용력을 보는듯 해 좋아. 나는 총을 들고 일본과 싸웠지만 젊은 세대의 전투는 모습이 달라져야지. 하지만 우리나라를 스스로 지키고 부강시켜 나가야 한다는 정신은 어떤 순간에도 잊어서는 안될 일이야".
권 할아버지는 대구.경북이 민족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섰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일제 병탄 후 처음으로 비밀 무장 독립운동이 태동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야. 나라 잃은 5년 후이던 1915년 활동하기 시작한 '대한광복회'가 바로 그것이지. 무장 독립운동의 기폭제였어. 그 이전에 국채보상운동으로 전국을 이끌었던 것도 지역민들 아니었던가?"
할아버지는 그런 대구.경북이 이제는 U대회라는 국제행사 주최를 통해 또하나의 '부강운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낸 후손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민족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대구.경북이 U대회를 통해서는 국제사회에 인도주의 정신을 드날리기까지 해 오래 산 보람을 새롭게 느낀다고도 했다.
"광복과 동시에 나뉘어진 남.북이 하나 되지 못한다면 나라를 위해 몸바친 선열들에게 우리가 무슨 명분으로 얼굴을 들겠는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가 일제로부터 진정한 광복을 이뤄냈다 할 수 없는 일이야. U대회에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도 많았어. 모두 큰 눈으로 봐야 해".
권 할아버지는 최근의 보혁 갈등을 나무랐다.
90여년 전의 치욕스런 역사를 되새긴다면 더 이상 갈등만 거듭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일본도 아니었고 북한도 아니었다.
오직 우리나라.
4대 2로 중국을 누른 일본팀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관중석으로 다가와 인사하자 할아버지는 힘껏 박수로 답례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