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U대회)가 끝나고 손님들도 다 돌아갔으니 이제는 우리식구끼리 집안 이야기를 터놓고 해보자.
손님이 사랑방에 와 계신데 집안싸움으로 소란을 떨거나 손님 험담을 수군대는 것은 잔칫집 주인의 미덕이 못된다.
그래서 지난 열하루 동안 국민들과 대구·경북시도민들은 시종 좋은 얼굴로 할말 참으며 오직 공들여 유치한 세계대회가 성공되기만을 열망하며 잔치를 치러냈다.
어젯밤 대구 월드컵경기장에 대회 성화가 꺼지는 순간, 긍지와 보람속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잔치가 끝난 지금 집안 이야기를 꺼내본다.
과연 우리(남북)는 이번 잔치에서 '하나가 되는 꿈'을 조금이나마 이뤄냈는가. 아니면 둘로 갈라져있는 비극적 현실을 다시한번 확인했을 뿐인가. 더 나아가 친북·반미로 갈라서고 있는 이념갈등의 편가르기만 더 골 깊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하나 되는 꿈'의 의미가 세계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꿈 아래 하나가 되자는 축제의 뜻임은 안다.
그러나 왠지 북한 응원단 미녀들이 뿌리고 간 두얼굴의 잔영(殘影)에서 함께 어울렸던 소중한 기억을 아끼면서도 남북이 하나되는 꿈은 아직도 멀어보이기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U대회 동안 우리는 두 그룹의 미녀들을 보았다.
한 그룹은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참가 미녀들이고 또 한 그룹은 북한 응원단의 미녀들이었다.
양쪽 다 꽃다운 나이의 대학생과 처녀들이고 골라 뽑혀온 미인들이며 U대회를 경축하는 같은 목적을 안고 왔다.
우선 미스월드유니버시티는 '세계 대학생 평화사절단을 뽑는 전세계 대학생 미인대회'다.
평화와 봉사가 대회의 정신인 만큼 뽑힌 미인들은 마약퇴치, 난민구호 등 세계평화와 봉사활동에 기여한다.
순수한 미인대회답게 U대회에 맞춰 일부러 대구에서 개최된 금년도 미스 유니버시티 참가 미인들은 대회기간 동안 정치이념 시비로부터 저만치 비켜나 있었다.
그저 한국의 복지 시설을 위문하고 야구장에서 응원도 하고 백화점 구경에다 올림픽 공원 나들이와 현충사 참배만 했다.
평화의 사절 미인들 답게 맑고 밝은 아름다움으로 봉사와 자유와 평화를 느끼고 누리는 즐거움만을 만끽한 것이다.
그런 미스 유니버시티를 뽑던 날 심사석에 앉아 자유분방한 세계 대학생 미인들의 티없는 얼굴들을 보면서 문득 장군님의 사진이 비에 젖는다고 울부짖고 고함치던 북한 미녀들의 격앙된 얼굴이 떠올랐다.
낮에는 경기장에서 앳되고 애교스레 미소짓던 그 얼굴이 장군님 사진 한장에 어쩌면 그렇게도 표변할 수 있을까.
대학생 미인대회 무대서는 영국 미녀가 자기나라 국기로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나와도 대학생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만약 누가 인공기로 스카프를 매고 경기장에 나왔으면 북한 미녀들은 어떤 얼굴을 했을까. 일부 네티즌들이 응원단 미녀들을 '정치선전에 동원된 응원기구'니 '로봇미인'이라 비유한 것도 어쩌면 그처럼 이해 할 수 없는 두 얼굴을 보아서 일지 모른다.
왜 꽃다운 나이에 북한 체제하에 교육받고 자란 미녀들의 얼굴과 자유 세계 체제 국가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대학생 미녀들의 얼굴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인가. 북한 미녀들의 심성이 원래 거칠어서(?). 결코 그건 아닐 것이다.
'교육의 의식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사상 교육에 원초적 아름다움마저도 굴절돼 버린 탓일 거란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세계대학생 미녀들이 보육원 방문으로 사랑을 배우고 백화점 야구장 나들이로 이웃의 삶을 함께 이해하고 체험할때 북한미녀들은 백화점 구경은 고사하고 오직 버스와 숙소와 경비가 삼엄한 응원석 공간속에서 정해진 구호만 외쳐야 했다.
그나마 남북 합동공연이 그런 이미지를 다소나마 덮어주긴 했지만….
꽃같은 그들이 남한, 아니 꼭 남한이 아니어도 좋다.
세계 어느나라든 북한 아닌 나라에 태어났어도 그런 두 얼굴을 지녔을까.
어느 퇴직 교장 독자가 물어왔다.
"하나가 되자는 응원을 같이 하던데 도대체 어느 쪽으로 하나가 되자는 거냐"고. 꽃다운 처녀들을 '두 얼굴의 미녀'로 만드는 체제로 하나가 돼야하는가 아니면 대학생 미인대회 미녀들처럼 만드는 자유민주 체제로 하나 되는 게 옳은가 하는 의문과 혼돈이리라.
U대회는 그 교장이 느낀 혼돈처럼 우리에게 '하나가 되는 꿈'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정해야 하느냐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어려운 과제일 것 같지만 잔치바람에 더 선명하게 노출되고 더 깊게 팬 이념갈등 분쟁과 시비의 해답은 의외로 북한 미녀와 세계 대학생 미녀들의 얼굴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된 민족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집안(남한내부)부터 먼저 이념적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
U대회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하나되는 꿈의 가능성과 함께 자유민주 체제가 전제되지 않고는 그 어떤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념논쟁도 무의미하고 위험하다는 점이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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