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북한 응원단이 머무르는 대구은행 연수원에 기자가 방문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부슬비가 내리는 오후 연수원 입구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차례 검문을 거치고, 신분증과 방문용 '비표'를 바꾼 끝에 숙소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의 마지막 날을 지내는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듯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응원단원들의 얼굴은 자못 상기돼 있었다.
이날 자리는 대구의 대표적인 안경제조업체인 (주)뉴스타광학측이 북한에 선글라스를 증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 4층에 마련된 귀빈실에 도착하자 마자 북한의 리일남 응원단장을 비롯한 관계자 4명이 들어왔다.
뉴스타광학 장지문 대표가 "반갑습니다.
지내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라며 인사말을 건네자 리 단장은 "대구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해주셔서 아주 좋습니다"라며 악수와 함께 답했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이 오간 뒤 붉은 색 티셔츠에 흰색 체육복을 곱게 차려입은 응원단원 한 명이 다과를 가지고 들어왔다.
아울러 북한산 '영광' 담배 2갑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리 단장은 "먹을 것을 잔뜩 가져왔는데 연수원측에서 워낙 음식을 잘 준비해 주다보니 우리가 먹으려던 다과가 남게 됐다"며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북한에서 가져온 사탕이며 과자를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뉴스타광학측은 준비한 선글라스를 놓았다.
북한 관계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선글라스를 만져보고 써보기도 했다.
"왜 색안경을 선물하느냐"는 질문에 장 대표는 "대구가 안경으로 유명한 데다.
이 제품은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우수한 품질"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관계자는 "안경테의 재질은 무엇이냐, 안경알은 무엇으로 만드느냐, 외산 제품에 비해 어떤 점이 우수한가" 등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이어갔다.
가격을 묻는 질문에 "시중가가 15만~20만원에 이른다"고 말하자 "미국 돈으로는 얼마냐"고 다시 물었다.
150달러 정도라는 답변에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보통 그 정도 하지"라며 답했다.
접대를 위해 내려와 있던 응원단원에게도 선글라스를 써볼 것을 권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단원은 선글라스를 끼고는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른 단원들도 써 봤으면 좋겠다"는 장 대표의 말에 "오후에 남조선 배구 결승전 응원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리 단장이 거절했다.
북한은 답례로 지름 1.5cm 가량의 배지를 선물했다.
파란 바탕에 흰색 한반도 지도가 있고, 위에는 붉은 글씨로 '조선대학생응원단', 아래쪽엔 '제22차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라고 적혀있었다.
북한 관계자는 장 대표의 가슴에 배지를 달아주며 "포장지가 다 구겨져 죄송하다"며 웃음지었다.
"벌써 떠난다니 아쉽습니다.
며칠 더 머무르다 가면 좋을텐데"라는 말에 리 단장은 "이 만남이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다음에 대구에서 큰 대회가 열리면 또 와야죠. 하루 빨리 당에서 조국통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취재기자의 동행을 모르는 북한 관계자는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남조선 신문에 온통 기사가 나는 것 아니냐"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증정식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응원단원들이 다소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삼삼오오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는 모습은 남쪽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남측 관계자들이 선물로 내려놓은 선글라스 상자의 이상유무를 점검하는 동안 복도에 선 단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흰색 저고리에 까만 주름치마를 맞춰입은 단원들은 방에서 응원도구를 챙겨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줄지어 가던 단원 중 한 명이 "오늘도 비가 오려나"라고 말하자 다른 단원은 "그래도 날씨가 덥지 않으니 다행"이라며 답했다.
북한 응원단은 마지막 경기 응원을 위해 버스로 숙소를 떠났다.
뉴스타광학 장지문 대표는 "이번에 전달한 선글라스는 20여개 모델에 540개이며, 시가로는 1억원 어치에 이른다"며 "대구를 찾은 북한의 손님들이 좋은 인상을 안고 돌아가고, 또 이렇게 전달한 선물들이 남북한 경협에도 도움을 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관련기사--==>매일신문 '2003 대구U대회 홈페이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