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가을 문턱에 들어선 봉평의 산 밑자락이 하얀 빛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에 차지 않는다. 너무 일찍 왔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여서 당연히 '메밀밭 천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평창군 봉평면사무소 소재지 입구 구간에 있는 메밀밭은 겨우 두세 필지. 그리 넓지도 않다.
가산 이효석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낼 때 보았던 봉평의 산허리가 지금도 산허리로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지금의 산허리는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밭은 옥수수 등 다른 작목이 차지하고 있다. '온통 메밀밭'이란 표현은 면사무소 소재지 왼쪽의 효석문화마을에서만 맞아 떨어진다.
봉평의 메밀밭은 한때 수입 메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당국이 이효석의 고향이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을 관광자원으로 인식하면서 다시 늘고 있다. 올해 당국이 경작 농민에게 평당 1천500원의 지원금을 줘가며 조성한 메밀밭은 6만평에 달한다.
8월 하순에 피기 시작해 9월 중순까지 봉평들을 하얗게 물들이는 메밀밭은 효석문화마을 주변 산자락에 주로 조성돼 있다. 지난달 29일 기자가 찾았을 때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는데, 만개하진 않았지만 '하얀 소금을 뿌린 듯하다' 표현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듯했다. 현지인들은 오는 주말부터 중순까지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면사무소 소재지 외곽을 흐르는 흥정천을 건너면 오른쪽으로 물레방앗간이 나온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눴다는 곳이다. 현재의 물레방앗간은 지난 1991년 이효석 선생 생가터가 있는 남안동 일대가 문화마을 1호로 지정되면서 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다.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잦아 아무리 용감한 청춘남녀라 할지라도 사랑을 속삭이기가 어려울 것 같고, 허생원과 반평생을 함께 한 나귀는 5일부터 열리는 효석문화제 준비를 위해 출타라도 한 듯 보이질 않는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봉평 특산물을 파는 상인이 관광객을 끌기 위해 설치한 것은 당국에서 설치한 것보다 더 운치가 있다.
생가터 가는 길목엔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효석문학관이 있다. 옛 봉평장터의 모형과 함께 이효석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볼 수 있도록 구성된 문학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입장료는 성인 2천원, 중·고생 1천500원, 어린이 1천원.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이효석이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터. 지금은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홍모(56)씨가 살고 있는데 홍씨의 증조부가 효석의 부친으로부터 집을 샀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짚으로 된 지붕이 양철지붕으로 바뀌었고, 가옥 구조도 일부 달라졌지만 단아한 모습에서 가산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삼성여행사(053-431-3000)는 7일과 14일 등 봉평 메밀밭과 허브나라농원, 무이박물관 등을 돌아오는 전용버스를 운행하며, 주말여행클럽(053-255-9964) 대구답사마당(053-423-185) 문화기행 사계(053-256-0274) 등 답사단체에서도 메밀꽃 개화 시기에 맞춰 상품을 내놓고 있다.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강릉 방면의 영동고속도로로 빠진 뒤 장평IC에서 내리면 봉평 이정표가 보인다. 장평IC에서 5분 정도 진행하면 봉평면소재지다. 대구에서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주변 가볼 만한 곳:봉평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무이예술관(033-335-6700)은 폐교에서 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 현재 5명의 작가가 이곳에서 작업중이며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조성됐다. 원두막이 있는 조각공원 앞쪽 메밀밭은 사진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물 맑은 흥정계곡 안쪽의 허브나라농원(033-335-2902)은 100여종의 허브가 동화 속 나라의 정원처럼 꾸며진 데서 자라는데, 허브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음식과 액세서리 등을 접할 수 있다.
▶먹을 만한 집:메밀의 고장답게 메밀 음식 전문점이 많다. 메밀국수는 3천500~5천원, 부침 및 전병은 1접시 5천원이다. 미가연식당(033-335-8805)에서는 볶음된장에 비벼 먹는 메밀싹나물비빕밥(6천원)을 내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메밀싹과 밑반찬으로 나오는 장아찌가 별미다. 글 사진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사진:가산 이효석이 선생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표현한 대로 소금을 뿌린 듯한 봉평의 메밀밭. 올해는 오는 주말부터 중순까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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