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사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그만 차이인 것 같은데도 같은 값이면 더 크고 맛있는 과일을 고르려는 진지한 표정들. 내가 맛있는 걸 고르면 누군가는 나머지 맛이 덜한 것을 골라야 하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값이면 보다 더 나은 물건을 사고,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는 욕구,그것은 의료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자기가 낸 의료보험료와 진료비에서 최선의 진료와 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제도는 막대한 의료비의 상승과 국민부담의 증가를 가져왔다.
의료수요의 증가,약국조제료의 신설과 병원 처방전의 노출에 따른 고가약 처방 등이 주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높아만 가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정부에서는 의료보험수가 인하,진료비 삭감 등 여러 방법으로 의료비를 줄여왔다.
그러나 최근에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시행중이거나 계획된 감기 전산심사나 DRG(포괄수가제)는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은 제도가 아닌가 우려된다.
간단히 말해 감기 전산심사는 감기치료시 쓸 수 있는 약물의 종류, 가지수, 주사회수 등 여러 규정을 정해 보험규정에 맞는 진료로 유도하자는 제도이고, 포괄수가제란 일정한 질환에서는 그 병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어떤 진료를 했든간에 동일한 수가를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높아져 가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제도 자체에 대해선 공감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의 특성상 걱정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똑같은 진단명으로 나가는 감기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기관지염, 폐렴, 중이염등 여러가지 상태로 진행될 수 있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태를 미리 예측하기 힘들 때도 많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맹장염이라도 상태에 따라 수술 난이도나 입원기간에 차이가 많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다양성을 가지고 살며, 그것은 질병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 제도가 가지는 피해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이라는데 이르면 경제적인 효율성 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상 무슨 제도이든 인간에게 제도나 틀을 맞추어야지 제도나 틀에 인간을 맞춘 경우는 일시적으로는 그 제도가 작용할지 몰라도 결국은 오래갈 수도,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도는 지나가는 길손을 잡아다 쇠침대에 묶어놓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팔다리를 자르고 키가 작으면 팔다리를 늘여뜨려 죽였다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지키기 힘든 기준에 인간을 맞추려는 노력은 결국 인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제도가 우리 의료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되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제형(대구시북구의사회 회장.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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