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신문 언론이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데 비해 방송언론은 여러 법적 제약을 받고 있다.
같은 언론임에도 양자에 차이를 두는 것은 국가자원을 사용하느냐, 않느냐와 관련이 있다.
신문이 매체로 사용하는 종이는 독점성이 없는 자원이다.
누구나 필요하다면 신문을 창간하고, 종이 매체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은 그렇지가 못하다.
주파수 대역이 한정돼 있어 원하는 사람 모두가 방송사를 설립할 수 없다.
방송이 국가자산인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는 이상 법적 제재를 피할 수 없게 되는 이유다.
▲주파수에 대한 국가 관리의 목표는 방송의 공영성으로 귀일된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정부나 특정 정당, 특정 종교,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된다.
국민 다수, 그리고 각계각층의 여론을 고루 반영해주는 수단이어야 한다.
신문이 방송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방송은 신문 비판을 삼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학에서 거론되는 말로 '무기대등의 원칙'이란 게 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소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대변하거나 보호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그들의 공사생활은 철저히 보호되거나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 비판받을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 같은 공인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변호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에 상응하는 비판이 가능하다는 게 무기대등의 이념이다.
▲어제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또 언론에 불만을 표시했다.
더러는 발전적인 언급이 없었던 바 아니다.
그러나 "방송도 가끔 대통령을 박살 내 억울하다"는 이야기는 묘한 뉘앙스를 던진다.
'(신문뿐 아니라) 방송도'를 뒤집으면 방송의 중립성이 무너졌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내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더라는 뉘앙스다.
이는 방송이 사회에 보편되는 정도의 객관성이나 사회적 공공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로 짚어볼 수 있다.
▲"언론은 견제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대목도 부적절한 시각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독재사회에서나 있음직한 현상이다.
민주질서 아래서는 대통령 입맛에만 맞추는 언론은 존재가치가 부정된다.
과거 공산주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위정 집단의 선전도구로서의 언론이란 궁극적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무기대등의 원칙으로 볼 때도 대통령은 누구보다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 다양하고 광범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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