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혼탁한 세상 꾸짖는 '대쪽 선비' 이상학 옹

"윤리와 도덕, 예절이 없는 세상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마다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담장을 타고 넘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물질 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꾸짖으며 아직도 한학을 통해 인간 윤리를 강독하는 꼿꼿한 선비가 있다.

경남 합천군 합천읍 서산리 서산서원(西山書院)의 춘산 이상학(春山 李相學.87)옹. 평생을 흰 바지 저고리에 두루막, 일제의 단발령도 거부한 채 지금도 상투를 틀고, 갓으로 정장을 갖춘 다음 30여년간 한학을 가르치고 있다.

매주 월.목요일 오전 10시쯤이면 합천은 물론 인근의 고령.거창.의령.진주.함양 등지에서 30여명의 유림들이 유건을 쓴 채 예를 갖춰 가르침을 받는다.

한때 대학 강단 출강을 인연으로 지금도 경북대 교수들과 멀리 충남 공주에서까지 찾아오고 있다.

춘산 선생은 한학을 가르치는 이유를 묻자, "물질만능에 빠진 세태가 한탄스럽다"며 "한학을 통해 윤리도덕과 인간이 살아가는 예절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다.

선생은 주로 한시(漢詩)를 통해 사람들이 덕을 쌓을 것을 강조한다

"세상이 물질 좇아 편한 것만 중히 여기니, 도의가 탁해졌는데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마음은 인륜 잃어 짐승처럼 되었으나, 겉으로는 옷을 입어 사람얼굴 꾸몄구나. 옳은소리 천마디도 가난하면 쓸 데 없고, 만사가 공정치 않아도 부자들은 들어주네. 물질만을 좇다보면 나라를 잃게되니, 원컨대 덕을 갖춰 마음에 새겨보세".

지난 86년 성균관 주최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선생의 시에서 선비정신을 새겨볼 수 있다.

선생은 주자학 등 폭넓은 지식으로 교수들의 논문지도와 수 많은 후학들을 길렀으나 정작 자신은 정규학교 문턱에도 발을 딛지 않았다.

일제 때 취학통지서를 받았으나 일본말을 배우기 싫었고, 일본인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선친의 가르침에 따라 인근의 한학자를 찾아 한학에만 몰두했다.

춘산의 학맥을 거슬러 올라가면 스승인 희당 김수 선생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 닿는다.

남명의 대를 이은 래암 정인홍이 참형되고 강우학맥이 사실상 끊김으로써 춘산의 학풍도 반골의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물질에 아부하기보다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선비의 절개를 오늘에까지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장남 태환(63)씨는 아버지의 선비정신을 뒤따르기 위해 정규교육을 포기하고 서산서원에서 주경야독하며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동이 트기전, 수건과 따뜻한 세수물을 받쳐들고 상투를 푸는 아버지를 도와 의관을 정좌케하는 맏아들의 모습에서 '몸소 행하는 효(孝)'의 본보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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