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진(45)씨의 신발 가게는 지난 10년간 늘 부산했다.
20평짜리 '동네 도매점'이 직영점 3개와 대형 마트 8개 입주점 혹은 납품점, 종업원 20명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느라 그만큼 분주했던 것. 불경기로 문닫는 가게가 적잖지만 그의 사업체는 가게에서 더 큰 기업으로 지금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조 사장은 한 일간신문사에서 견습기자 생활을 하다 1987년 서른 나이에 무역업체를 창업했다.
섬유공장에 쓰이는 화학약품과 건축용 필름지를 수입해 팔았다.
1, 2년은 그런대로 잘 꾸려졌다.
하지만 상황은 머잖아 변했다.
섬유업체들이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판매망을 잃었다.
조 사장은 대신 무역업차 자주 드나들던 부산에서 '신발'에 대해 알게 되는 수확을 얻어 놓고 있었다.
"한짝은 합격품인데 다른 짝은 불합격품으로 생산되는 신발이 있습디다.
그럴 때 제조회사측은 그 모두를 불량품으로 판정해 무게로 달아 떨이를 해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런 불량품들을 잘 재정리, 합격품끼리 짝을 다시 맞춰 팔기 시작했다.
물론 정품도 확보했다.
전국을 순회하는 중소기업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신발 장사'에 나섰다.
그때가 1991년, 무역업체 사무실에 셔터를 내린 지 2년만이었다.
당시 월평균 매출은 1억여원에 달했다.
하지만 또 위기는 왔다.
순회 박람회의 경기가 죽기 시작하더니 호황도 오래 가지 못했다.
조 사장은 "이젠 가게를 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구 신천동에 20평짜리 신발 도매점을 열었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이미 대구에만도 20개가 넘는 터줏대감 신발 도매점들이 포진하고 있던 터여서 주위에서는 걱정을 했다.
"황무지에서 수확을 얻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옥토를 갖고 있었습니다.
순회 박람회 참가로 많은 소매점 거래처를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개업하자마자 30개가 넘는 소매점과 거래를 틀 수 있었습니다.
장사는 기반과 경험을 갖고 시작해야 합니다".
돈 좀 벌린다고 제 주머니 차기 바빠 했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라고도 했다.
"저는 번 돈을 모두 제품 사모으는데 투입했습니다.
당시엔 대부분 어음 거래를 했지요. 하지만 저는 현금을 주고 신발을 가져왔습니다.
현금을 주면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싸게 가져 와 싸게 파니 승부는 뻔한 것이었지요. 소문이 번지면서 소매상들이 서로 물건을 가져가려고 우리 가게로 모여 들었습니다".
조 사장 가게에서 파는 신발은 이른바 '중저가품'이다.
나이키·리복 등 해외 브랜드 신발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런 중저가품이 우리나라 신발 시장의 70%를 차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왜 사람들이 갈수록 중저가품을 많이 찾는지 아십니까? 값은 싼데도 품질이 좋으니까 신는 겁니다.
발이 불편하면 누가 신겠습니까? 원리는 이렇습니다.
국내 제조업체에서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주문 생산하면서 꼭같은 품질로 자체 상표의 제품도 만들어 냅니다.
품질의 차이는 유명하다는 상표를 붙이느냐 마느냐 뿐입니다.
하지만 값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품질이 똑같은데 뭣하러 값을 3, 4배나 주고 해외 브랜드를 사겠습니까?"
중저가품이 갈수록 뜰 것이라고 보는 이유로 조 사장은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꼽기도 했다.
그것이 유행을 급속도로 확산시키는 추세여서 연예인이 드라마에 어떤 신발을 신고 나타나면 며칠 뒤 신발가게마다 같은 신발을 찾는 손님이 줄을 이을 정도라는 것. 하지만 대형업체는 그런 유행을 민감하게 따르지 못한다고 했다.
반면 중저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체들은 유행에 민첩하게 대응해 곧바로 중저가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사장은 주5일 근무제 확산까지 주목하고 있었다.
"주5일 근무제로 레저 수요가 늘면 신발은 더 뜹니다.
요즘 차 짐칸에 신발 4, 5켤레 안싣고 다니는 사람 있습디까? 용도별로 신발을 다 갖추는 세상입니다.
싫증나면 다른 걸 또 금방 사기도 하고요. 교환 주기가 빠른 만큼 비싼 것에 대한 집착은 떨어집니다
중저가품 수요는 그래서도 더 늘 겁니다".
이런 근거로 조 사장은 관련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가 많이 몰리는 곳에 가게를 차리라고 충고했다.
신발 수요는 자동차가 많이 움직이는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동차 이용자들은 구매력이 100%라고도 했다.
조 사장은 최근들어 중국에서 낮은 노동비용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들여와 판매하는데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가격을 낮춰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때문이라고 했다.
"더 값싸고 질좋은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많이 다닙니다.
장사에서는 '싸고 좋은 것'이란 말 외엔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경기가 어려우니 돌파구를 더 열심히 찾아야지요. 신문과 TV를 주의해 보면서 새 유행도 익혀야 합니다.
저도 요즘은 연예계 박사가 다 됐습니다". 053)761-0885.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사진)정운철기자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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