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들이 전하는 즐거운 명절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추석(11일)이 나흘앞으로 다가왔다.

예로부터 이맘때면 햇곡식·햇과일로 음식을 나누고, 친지나 이웃과 만남의 기쁨을 나눴다.

보름달이 떠오른 밤에는 온가족이 소원을 비는 의식도 가졌다.

그러나 추석 명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집마다 명절쇠기의 방식은 적잖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부 젊은 세대는 전통 명절보다는 '연휴'라는 의미에 더 무게를 둔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지난 3월 결혼한 새내기 주부 김명화(29·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씨는 결혼 후 처음 맞는 추석명절이 아직은 부담스럽다.

지난 4월 시댁 맏며느리로서 처음 제사를 지내면서 제사준비는 여자들이 하지만 정작 제사에서는 배제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구분하는 시댁의 분위기는 추석명절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다.

결혼 전 친정에서는 제사 참여는 물론 벌초까지 했다는 김씨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가부장적 명절문화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된 것 같다"며 "차츰 할 말은 하고 시댁안에서 내 자리를 찾는 며느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회가 되면 친정 차례에도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평소 가사분담을 실천하는 자상한 남편도 아직 김씨의 제안에는 태도를 유보하고 있다고. 시댁에 '편입'과정인 올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시어른께 명절문화를 바꿀 것을 제안할 작정이다.

3년차 주부인 이동유(26·대구시 달서구 송현동)씨도 여자가 겪는 명절은 불편하다고 털어 놓는다.

연휴기간인 만큼 푹 쉬고 싶은데 또 덤으로 가사노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댁이 큰집이라 어른들과 친척 방문이나 선물 부담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자니까, 며느리니까, 맏이니까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원칙은 따로 없지만 명절이 주는 중압감을 더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3형제 중 차남인 박종화(38·회사원)씨 집의 경우는 남자들이 부엌일을 거들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다.

남성위주의 명절문화에 작은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지는 몇년이 지났다.

처음 형님 내외가 나서니 어쩔 수 없이 주춤거리며 동참했으나 이젠 4촌 동생들까지 스스럼없이 여자들의 일을 도와준다.

탐탁지 않아 하는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조심스러웠지만 이젠 모두 당연히 해야한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준다고 한다.

박씨는 "평소에도 맞벌이에다 육아부담까지 지고 애쓰는 아내가 힘들겠다는 공감대만 형성되면 함께 나누는 명절문화가 별로 어려울 것 없다고 생각한다"며 "명절이 달라지려면 무엇보다 남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12년차 막내며느리 박유경(39·회사원)씨는 3년 전 "여자들은 내내 음식만 차리고 남자들은 고스톱만 치는 명절문화를 바꾸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대신 며느리끼리는 밖에 나가 영화를 보고, 남자들은 오랜 만에 아이들과 함께 노는 대안을 제시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참했던 남자들이 몇 번의 명절을 거치더니 더욱 반응이 좋아졌다고 한다.

명절 내내 먹거나 고스톱만 치면서 보내는 것보다 아이들과 팀을 꾸려 축구시합을 하는 것에 재미를 들였기 때문이다.

대구가톨릭대 제석봉(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가족끼리의 대화 부재 속에 맞는 추석은 단절됐던 가족들과 세대간에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이뤄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살려야 한다"며 "형식적인 요소를 간소화하고 가족들간 친목을 다지는 만남의 시간으로 가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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