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해당화처럼 붉게 멈춰버린 내 마음에

진주되어 빛나는 처녀가 살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금빛 일렁이는 바다 위 걸어

해를 만지러 가곤 했습니다.

잡힐 듯 멀어지는 손 뻗으며 그녀는

바다 밑 갈앉고 물풀에 덮였습니다.

그 후 난, 문득

깊은 잠에서 깨어 울곤 합니다.

그러면 먼 시간의 수평선 너머

붉은 해를 타고 올라오는 손길 느낍니다.

-김동원 '處女와 바다'

김동원 시인은 정말로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시를 신앙처럼 신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시와 관련된 찻집을 운영해오다 결국 문을 닫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마음속에 감춰 두었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고, 또 밝히고 있다.

어린시절 함께 뛰어 놀던 소녀가 바다에 들어가고 난 후 결국 시인도 마음 속에 무덤 하나 만들어 그리며 살아왔다는 말이다 그 비밀의 공간을 시인은 조심스레 내어놓고 있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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