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 단체장은-한가위와 만나는 가을 추억

한가위 명절이 다가온다.

유난히 비가 잦아 풍년을 기대하기 힘든 한 해였지만 고향을 찾아올 귀한 얼굴들에게 웃음을 건네기 위하여 코스모스, 구절초, 억새풀, 무심히 보아왔던 그것들이 무더기로 다투듯이 피어난다.

여름날의 힘겨운 추억들은 까맣게 탄 얼굴 뒤로 묻어두고 가을 길목에 먼저 나가 선 농부네의 주름은 쏟아지는 가을볕에 더욱 선명하다.

비가 많았다고는 해도 올 여름은 온통 물난리로 밤낮없이 침수현장으로 뛰어다니던 지난 여름의 악몽을 생각하면 그래도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침수된 가재도구들을 하나라도 건져보려는 울부짖음과 함께 차단된 교통을 막무가내로 밀치며 통과해 보려는 주민들의 아픔을 눈으로 보면서도 방법없이 터덜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오던 새벽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세월은 흐르고 어김없이 한가위도 찾아온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한 해마다 늘어나는 나이가 그렇고, 가슴을 태우는 그리움이 그렇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그렇다.

유난히도 비가 많은 요즘, 지난 여름 우리지역을 핥고 지나간 태풍 '루사'에 대한 아픔이 다가오는 한가위와 함께 추억으로 다가온다.

서울을 오가며 무너진 낙동강 제방을 복구하기 위한 예산을 얻으러 다니던 힘겨움 뒤에 그 어느곳 보다도 많은 지원을 약속받던 날 밥을 굶어도 좋을만치 행복했던 기억은 이 어려운 책무를 맡았기에 느낄 수 있었던 뜨거운 경험이었다.

이제 고향을 찾아 형제들도 자식들도 큰집인 우리집으로 모두 모여들것이고, 주민들도 차례상을 마주하고 가문과 핏줄의 결속을 확인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휑하니 비어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올해는 더욱이 풍요로운 한가위를 바라고 어려운 지역경제를 위해 '추석상품 지역에서 구입하기' 캠페인을 벌이며 애를 썼건만 얼마나 많이 따뜻함으로 다가와 줄는지 내심 걱정이다.

작은 계단마저 오르내리기 힘들어 하던 집안 종형수의 마지막 뒷모습, 아무리 바빠도 한번 더 정감어린 인사라도 해드렸어야 했다.

어느새 제 자식낳아 밤새 낑낑거리던 딸아이가 목덜미 안아주던 손주를 빼앗듯이 데리고 제 남편 곁으로 떠나버린 빈자리가 유난히 허전하다.

느닷없이 밀려오는 이러한 단상들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대상에게 진정으로 다가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어느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호수가 산을 품어 안은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실존의식이라 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일탈을 통해서 내게 맡겨진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간절히 염원하면서 해야 할 일에 전력을 기울이며, 사랑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야겠다.

김태근(고령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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