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달팽이 편지

얼마 전 병원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15년 만에 연락이 닿아 만났던 초등학교 적 친구가 한 권의 책과 함께 보낸 편지였다.

'애리야! 안녕.

장마철이라 마음까지 푹푹 젖어있다….

…네 얼굴에서 어린 날의 체크 멜빵 치마 입은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진한 네 경험을 했구나'.

이 편지는 어린 시절 향수를 느끼게 해 주었고 세월이 가져다 준 서먹함을 없애주었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연습장에 쓴 글을 또박또박 옮겨 적어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고 툭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뒤돌아서던 기억이 어느새 아득한 추억이 된 나이기에 친구의 편지는 더욱 정겹고 고마웠다.

클릭 한번으로 어디든 순식간에 전달되는 E메일에 비해 달팽이처럼 느리다는 의미로 편지나 엽서 등의 종이우편을 S메일(snail mail) 즉 달팽이 메일이라고 한다.

빠르고 편한 E메일은 지워버리기도 쉽지만, 편지는 보낸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 선뜻 버릴 수 없다.

나는 남편과 두 아이에게 받은 편지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고 그 편지 속엔 아직도 그들의 사랑이 숨쉬고 있다.

가끔씩 편지를 꺼내 읽을 때면 그때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또 아이들이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볼 수 있게 매일같이 편지를 써 놓고 출근하곤 했는데 아이들은 그 편지를 무척 좋아했고, 아직도 그것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집에 없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E메일이 간편하긴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 서로의 느낌을 나누기에는 아무래도 달팽이 편지만은 못한 것 같다.

바쁜 세상 탓인지 가까운 사람과도 마음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대화도 단절될 뿐더러 반복되는 일상에 마음은 점점 굳어져 간다.

이럴 때 마음의 담을 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을 열어주는 건 가을날의 달팽이처럼 느리고 작은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소중한 이에게 사랑한다는 편지 한 장 보내는 구월이 되길 소망해본다

강애리 사랑이 가득한 치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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