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흉년에 태풍까지 겹쳐 우울한 한가위 민심

도시 지역의 경기 불황에다 농촌지역의 흉년속에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올 추석은 태풍 매미가 끝장내 버렸다.

힘들게 찾았던 고향에서의 편안함도 일순간, 많은 출향민들은 태풍을 피해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 토요휴무제까지 겹쳐 예년보다 길 것이라던 추석 연휴가 오히려 짧아져 버렸다.

"한가위만 같아라던 말이 무색합니다.

추석을 맞아 1년 만에 돌아온 시골동네는 넉넉함과 여유는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정적만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설날 고향을 찾지 못해 식당일을 서둘러 접고 추석연휴 하루전 일찌감치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 고향집으로 내려온 김성한(48.경기도 안산시)씨는 듣기보다 심각한 흉년 농심에 몇번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예년 같으면 제수용 사과를 출하하고 오랜만에 목돈 쥔 기분에 온동네가 생기를 띠고 귀향한 이웃 자녀들까지도 내집 식구처럼 반겨 맞던 주민들의 정감이 간 곳 없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흉작으로 내다 팔 사과가 절반으로 줄었는데다 그나마 값나가는 상품도 없었고 앞으로 만생종도 병충해로 품질이 나빠 돈 되기는 틀렸다며 모두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일직면 운산리는 추석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스산한 분위기다.

수천, 수백평씩 고추농사를 지은 농가마다 첫 수확도 변변히 하지 못한 채 폐농한 터였다.

이 마을 김은임(63.여)씨는 "추석때 도시에서 고향을 찾은 자녀들에게 양념거리로 들려 보내줄 고추조차 없고 빚냈던 영농비 갚을 일도 막막한 지경"이라고 탄식했다.

귀향한 자녀들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고향집을 찾은 이수호(38.경기도 부천시)씨는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라고 했다.

실직한 지난봄 부모님께 이번 추석때 돌려 드리기로 하고 가계자금으로 빌린 500만원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가전제품 부속을 만드는 중소기업체에 취업을 했지만 3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다 이번 추석때 겨우 한달반치를 받았으나 외상값 일부를 갚고 나니 빈손, 부모님께 빚은 고사하고 제수비용조차 변변히 드리지 못한 것이다.

안동시 남부동 재래시장 주변 의류상인들은 "연중 최고 대목에 손님이 없어 빈집만 지킨 꼴이 됐다"며 "추석 지나면 또 얼마나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을지 걱정될 따름"이라고 말했다.

농촌지역의 추석 민심은 완전히 바닥이다.

삼삼오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억세게도 궂은 하늘을 원망하고 이런 실정을 외면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질책했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농가부채 경감안에도 불만이 많았다.

정책자금 이자감면과 상환기한 연장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제 농가부채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호자금을 경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겉치레 대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따랐다.

지방을 살찌우겠다는 지방분권정책에도 할말이 많았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가고 여파로 지역경기와 교육기반이 붕괴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특히 서울 강남 등 일부지역의 아파트값 안정 목적으로 발표한 판교 신도시 건설안을 두고 과거 유사한 정책이 성공을 거둔 전례가 없는데도 또다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겠다는 반면 지방에는 허울뿐인 특구지정 정책이 고작이라고 혹평했다.

또한 민생은 아랑곳 없이 개혁이란 미명 아래 밤낮 없이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진흙탕싸움에 진저리가 난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어려움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중심을 잡을 것을 촉구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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