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팔순 노모를 매일같이 모시는 효자였는데…. 이렇게 떠나다니…".
태풍 매미가 몰고 온 폭우로 졸지에 남편 방동규(43)씨와 시어머니(83) 그리고 둘째 아들(15.중3년)을 잃어 버린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 솔안마을 허여남(40.여)씨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엄청난 재앙에 말문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가재도구라곤 숟가락 하나도 건지지 못한 허씨. 워낙 큰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마당에 쌓인 돌무더기에 펄썩 주저앉아 경찰과 소방관들의 구조작업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된 집 앞에서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허씨의 모습에 119구조대원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아낙들도 소리없이 눈물을 훔쳤다.
하마터면 허씨도 이날 화를 당할 뻔했다.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졌다.
휴가를 나온 맏아들(21)이 귀대하는 길을 바래다 주러 집을 나섰다가 가까운 춘양역에서 열차를 놓치는 바람에 영주역까지 나오느라 사건당일 새벽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것.
"구조요청을 하려 해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전기가 끊겨 온통 깜깜한 데다 전화도 불통이고 산사태로 길까지 막혀 버렸으니까요. 온전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지난 13일 새벽 2시쯤 사고가 발생한 이후 5시간이 지난 이날 아침 7시쯤 최초로 외부에 사고 소식을 알린 마을 이장 전운학(47)씨는 다급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태풍 매미가 봉화군을 관통하던 지난 13일 새벽, 마을 뒷산에서 집채만한 바위와 암죽같은 토사가 엄청나게 밀려와 당시 1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솔안마을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엄청난 토사는 마을 맨 위쪽 산아래 집에서 추석을 쇠고 단잠에 빠져 든 방씨의 집을 삼켜 버리고 아래쪽 이웃집도 3채나 덮쳤다.
방씨가 기르던 두살배기 소도 외양간에서 속절없이 집채만한 바위에 깔려 죽었다.
'따딱! 우르르릉'하는 산사태 소리에 놀라 잠을 깬 이장 전씨는 방문을 열고 마을을 둘러봤으나 전기가 끊겨 마을 전체가 칠흙같이 어두웠다.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둘러 보고 나서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전화는 물론 휴대전화까지 불통됐다.
날이 밝으면서 드러난 마을 전경은 말그대로 쑥대밭. 면소재지와 영양군 일월면, 울진군 서면 등지로 통하는 3개 방면 도로가 몽땅 크고 작은 산사태로 막혀 버려 전화를 할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야 가까스로 신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뛰다시피 걸어서 현장에 도착한 영주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의 손놀림은 분주했으나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유실된 도로가 복구되지 못해 중장비 없이 삽과 괭이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신고를 접한 119구조대원들은 길이 끊겨 구조활동이 늦어지자 마을로 통하는 길목 곳곳 10여군데의 산사태 지역을 헤치고 10여㎞를 걸어서 2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늦게서야 포클레인 2대가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다.
봉화.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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