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태풍 '루사'에 이어 다시 큰 피해를 입은 김천에선 귀성객들이 귀가도 미룬 채 복구에 나섰다.
추석을 지낸 고향집에서 날벼락을 맞았지만 오뚜기처럼 일어서겠다는 용기를 수해 주민들에게 심어주었다.
13, 14일 김천시 지례면 등 5개면 일대 들녘엔 서울.경기.대구 등 외지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논두렁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조마면 장암리 앞 논에서 노모와 쓰러진 벼 세우기 작업을 하던 김정수(35.서울)씨는 "12일 오후 상경할 계획이었지만 태풍 예보가 있어 하루를 미뤘었다"며 "아침에 논에 나와 보니 수확을 앞둔 벼 수백평이 쓰러져 있는데 차마 노부모를 두고 귀가할 수가 없었다"며 연신 구슬땀을 훔쳐냈다.
내 집과 논만 복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감천이 범람해 마을을 온통 뒤덮은 구성면 미평3리에선 외지에서 온 친인척들이 나서 마을길 청소에 나섰다.
박병훈(33.서울)씨는 "마을 농경지 5ha 정도가 거의 침수돼 복구는 엄두조차 못내고 마을 도로라도 청소한 뒤 귀가할 생각"이라며 "복구도 어렵지만 농사를 포기하려는 부모와 마을 노인들을 위로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피해가 컸던 전기시설 복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전사태가 비교적 빨리 해결된 데는 강풍 속에 목숨을 내걸고 복구에 나선 한국전력 직원들이 있었다.
한전 포항지점 권태원(51) 종합상황실장은 "태풍이 지나간 12일 밤 10시부터 13일 새벽 5시까지 정전과 복구, 안전사고 위험 등이 반복되면서 실무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바람이 초속 6m 이상이면 안전사고 때문에 공사를 포기하지만 이날은 초속 20m가 넘는 상황에도 공사를 강행했다.
바켓트럭을 타고 전주를 10여m나 올라가 작업했고, 일부 직원들은 안전끈에만 의지한 채 전주에 올라 수십개를 복구했다.
암흑세계로 변한 포항 도심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귀금속점을 지키던 상인들은 정전 한시간 만에 전등이 들어오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고추 수확철을 맞은 청송군에선 인력이 크게 부족해 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연일 동원되고 있다.
안덕.현서.파천면지역에선 대도시에 나갔던 자녀들이 찾아와 사과나무 세우기 작업에 일손을 거들었다.
청송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현서면 김경남 면장은 "복구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어디부터 복구작업을 펼쳐야 할지 막막하다"며 "피해지역 주민 위로, 복구현장 조사에다 야간에는 사무실에서 전화 및 군청 보고서 작성으로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영양군에선 주말 이틀간 포클레인 86대, 덤프트럭 28대, 청소차 16대 등 130대의 중장비와 공무원, 군인, 민방위대원 등 800여명이 동원돼 비지땀을 쏟았다.
영주지방국도관리사무소는 13일 오전부터 일월면 섬촌리와 입암면 삼산리 등에 중장비를 투입해 끊어진 도로 1차로 복구작업을 폈고, 14일 중 대부분 도로에서 임시복구작업을 마쳐 일부 차로를 확보해 차량을 통행시키고 있다.
전기 및 통신시설 복구도 영양읍 황용리, 입암면 삼산 산해리 지역은 완료됐고, 수비면 송하리 등은 15, 16일 완료될 계획이다
영덕군에서도 복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군내 202개 마을 중 190개를 암흑으로 몰았던 정전은 15일 완전 복구됐고, 통신도 중장비 진입이 어려운 영해면 대리를 제외하고 개통됐다.
산사태로 완전 통제됐던 영덕~안동간 34번 국도와 부분 통제됐던 7번 국도는 14일 오후부터 완전 개통됐다.
그러나 영덕읍-달산면 차량 통행은 지품면 신양교 교량상판이 내려앉아 15일 현재까지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영덕군은 주말동안 500여명의 직원을 비상 동원했으며, 해안 5대대 장병 20명도 축산면에서 응급복구를 벌였다.
의성군은 구천면 미천제방 붕괴로 300여ha의 농경지가 침수된 미천.내산들 등 수해지역에 공무원 등을 투입, 응급복구에 나섰다.
또 15일 경북도청 공무원 50명, 군부대 장병 20명 등 70명의 인력을 지원받아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구천면 미천1.2리 주민들은 미천제방 붕괴를 두고 인재 가능성을 제기해 앞으로 수해보상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주민 이철식(63)씨는 "제방 붕괴로 수확을 앞둔 과수와 벼농사를 망쳤다"며 "시시비비를 가린 뒤 관련기관에 손해보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현장 곳곳에선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애를 태우고 있다.
청송.영양 등 일부 산간 마을에는 여전히 통신과 교통이 두절돼 복구는커녕 정확한 피해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일부지역 주민들은 읍.면사무소를 찾아와 장비지원을 요청했지만 약속만 받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농작물이나 주택 피해 복구는 아직 엄두도 못낼 형편이지만 도로.통신.상수도 등 공공시설은 비교적 빠르게 제모습을 찾고 있다.
통행이 제한됐던 경북지역 도로 33곳 중 30곳의 소통이 재개됐고, 정전피해를 입은 15만2천가구 중 14만8천가구에 전기공급이 시작됐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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