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구에만 수개월...지역공단 '매미' 피해

"수십년간 피땀으로 일궈온 공장이 하루 아침에 폐허로 변했습니다. 경기 침체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회사를 꾸려왔지만 이젠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습니다".

태풍 '매미'가 지역 산업 현장을 할퀴고 간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대구.경북 제조업체들은 복구작업에만 수개월이 소요돼 이제 더 이상 회사를 꾸려갈 수 없다며 절망의 한숨을 토하고 있다. 또 지역 최대 제조업 단지로 태풍 피해가 가장 심각한 성서공단과 달성공단은 당분간 정상 조업이 불가능해 지역 제조업 생산 기반이 뿌리채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성서공단

대구 성서공단 성서병원 뒷편에서 섬유업체를 경영하는 유성재 사장은 지난 12일 지역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매미'로 폴리에스테르, 면, 레이온 교직물 등 90만야드 상당의 원단이 빗물에 침수돼 8억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비가 그치자마자 새벽부터 온 가족이 함께 나와 양수기로 빗물을 퍼냈지만 기름에 뒤범벅된 원단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대부분이 쓸모없는 천 조각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유 사장은 "빗물이 스며든 사출기 2대도 작동을 멈췄다"며 "정부 차원의 종합적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자체 복구만으로는 더 이상 회사를 꾸려갈 수 없다"고 절망했다.

공단내 업체들에 따르면 이곳 태풍 피해는 대명천 범람을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지난 12일 밤 10시를 전후해 월성펌프장 20여대 펌프 중 8대가 작동을 멈춰 대명천이 넘치면서 주변 도로 20여㎞가 침수됐고, 범람한 물이 공단내 저지대로 흘러들어 이 일대 대부분이 물바다로 변했다. 소음과 환경을 고려해 생산시설을 지하에 집중배치한 20여개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물에 완전히 젖은 제품 및 기계 설비가 완전 고물로 전락했고 초속 33m의 기록적 강풍은 지붕, 굴뚝, 창고 등 각종 공장 건물을 절반 넘게 뜯어 놓았다. 공단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업체별 피해액은 섬유, 전자, 자동차부품 등 전 업종을 가리지 않고 최소 500만원에서 최고 8억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성서공단에서 발생한 오·폐수를 처리하는 성서공단 환경사업소가 침수되면서 오·폐수 정화시설인 모래여과기와 용수공급동을 비롯해 폐수 탈수·농축조 등이 완전히 물에 잠겨 일부 기기는 당분간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 또 유통업체인 모다아울렛 경우 1층매장이 사람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 집기 및 공조 설비 교체가 불가피하게 됐고 20억~30억원에 이르는 상품이 침수됐다.

◇달성공단

달성공단 모 자동차 부품업체 이모 대표는 그나마 성서공단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숨지었다. 구마고속도로진입로 부근 자동차부품, 섬유 등 20여 업체는 일대 야산이 무너지면서 바위와 토사가 공장을 덮쳐 업체마다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는 것.

그는 "전 직원들이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공장내 흙더미를 걷어내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흙더미는 어떻게 걷어낸다 해도 각종 생산설비가 완전 작동을 멈춰 상당기간 정상 조업이 불가능하다"고 한탄했다.

공단내 업체들에 따르면 전체 210여개 업체중 50개가 침수 또는 파손 피해를 입었지만 이곳 태풍피해는 대한소결금속 입구 네거리에서 구마고속도로진입로까지 약 1㎞ 구간 20업체에 집중됐다.

일대 야산이 무너지면서 바윗돌과 토사가 공장 진입로는 물론 공장 내부까지 가득 들어찬 이 일대는 복구작업조차 쉽잖은 실정이다. 정전사태까지 겹쳐 밤엔 아예 복구작업조차 불가능하고 화장실, 식당 등이 모두 산산이 부서져 의.식.주 해결도 안되고 있다.

폴리에스테르를 수출하는 ㅁ섬유 유모 사장은 "생산설비와 원자재가 흙더미에 묻히면서 수십억 원대의 손실을 입었다"며 "납기가 불가능한 간접적 피해까지 합치면 총 피해액은 갈수록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당장 30여명에 달하는 종업원들의 생계문제부터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

달성공단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해외 수출을 앞두고 완제품을 쌓아 놓은 업체들도 상당수라 피해는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공단 피해를 철저히 조사해 업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14일 침수 피해를 당한 성서공단의 한 공장 직원들이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젖은 원단을 밖으로 옮기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