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시커먼 뻘로 뒤덮였던 태풍 '매미'의 피해 현장은 팔을 걷어붙인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마법처럼 제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망연자실, 피해현장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몸서리쳤던 수재민들도 자원봉사자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봉사에 차츰 활기를 찾았다
대구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단연 달성군. 이번 태풍으로 달성군이 입은 피해액(잠정)은 1천186억원. 대구전체 1천396억원의 85%에 이른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지역은 논공읍 달성산업단지와 유가면, 구지면 일대 등. 산사태로 공장들이 흙더미에 깔렸고 하천 범람으로 가옥 등 마을도 물에 잠겼다.
길이 끊어지고 논과 하천도 유실됐다.
자원봉사자들은 넋을 잃은 수재민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됐다.
달성군 수해지역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는 하루 평균 30여개 단체의 3천여명. 이들은 대구는 물론 인천.천안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들은 도로, 하천 복구 및 정비, 토사제거 작업, 공장 청소, 쓰레기 수거, 주택 및 전기, 보일러, 가전제품 수리, 급식, 빨래 등 온갖 궂은 일도 마다 않았다.
이에 회복 불가능해 보이던 피해 지역들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갔다
피해가 극심했던 달성공단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 벽이 무너지고 산사태, 하천 범람 등으로 질퍽한 흙더미가 공장과 도로를 완전히 뒤덮었다.
이에 흙을 퍼 나르기 위해 포클레인, 덤프트럭 등 중장비들이 도로를 꽉 메워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특히 산 쪽에 위치한 몇몇 공장은 거의 흙더미에 묻히다시피했다
공장을 뒤덮은 토사를 제거하는 작업의 선봉엔 역시 군장병들이 있었다.
이들은 손에 삽을 들고 포클레인과 함께 수천평 공장에 허벅지까지 찬 진흙들을 조금씩 파냈다.
201특공여단 소속 한 병장은 "오전 7시쯤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진흙더미와 싸움하지만 지난해 루사 피해를 입었던 김해에 지원갔던 경험이 있어 많이 힘들진 않다"며 "며칠째 인근 체육관에서 생활하며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직접 수재를 당한 심정으로 기꺼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공장 안에서도 토사 제거 및 바닥 청소가 이뤄졌다.
또 공장 한쪽에선 흙으로 더러워진 부품을 닦고 손질하는 작업도 한창이었다.
자원봉사자 정순락(38.여.대구시 북구 읍내동)씨는 "진흙더미가 공장안까지 덮쳐 각종 기계와 장비, 부품 피해도 입은 것 같다"며 "보기만 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데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어떨까 싶어 하루빨리 정상 영업이 됐으면 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도우고 있다"고 했다.
SK텔레콤 직원들도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삽을 들고 피해현장에 모였다.
이들은 산더미 같은 진흙을 파내고 모았다.
또 막힌 배수로도 뚫었다.
박종무(37) 마케팅지원팀장은 "처음엔 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조차 안났지만 3, 4일 정도 지나면서 조금씩 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수해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해보긴 처음이어서 힘은 들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무실도 침수돼 각종 사무자재들이 모두 엉망이 됐다.
이에 자원봉사자들은 흙으로 뒤범벅이된 의자, 테이블 및 플라스틱 박스 등을 마당 구석에 내놓고 물로 씻고 걸레로 닦았다.
이들은 흙탕물이 신발과 옷에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해 좋다'며 웃음까지 띠었다.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김종열 남선산업 상무이사는 "지금까지 퍼낸 흙만 해도 15t 트럭 300대 분량"이라며 "150여명의 직원들이 추석연휴까지 반납하고 지금까지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군장병, 자원봉사자 등이 없었다면 이처럼 빠른 복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처음엔 너무 막막했는데 봉사자들 때문에 힘을 얻어 함께 복구작업을 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 섬유공장은 기계와 섬유가 거의 못쓰게 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공장엔 온통 물과 진흙 투성이었다.
이에 봉사자들은 공장의 모든 물건을 동원해 피해 복구에 온 힘을 쏟았다.
섬유 염색 판자를 이용, 흙탕물을 한쪽으로 모아 양동이로 연신 퍼냈다.
또 두루마리 섬유는 흙탕물 번짐을 막는데 사용됐다.
또 외발 리어카도 진흙을 실어 나르는데 동원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침수 피해 마을을 찾아 유실된 가옥, 도로, 하천 등을 복구하기도 했다.
대구 삼성명가아파트 부녀회원들은 달성군 유가면 본말리 침수가옥을 찾아 장독 등 진흙 범벅이 된 각종 가재도구를 씻고 완전히 뻘로 변한 방안도 청소했다.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고 씻고 닦아 말렸다.
또 사용 가능한 물품을 분리해냈다.
가려내 버린 쓰레기량만도 4포대. 마을의 침수된 도로와 밭에 널브러져 있는 각종 쓰레기도 청소했다.
박정숙(55) 부녀회장은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보다가 수해현장에 직접 와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봉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약속한 자원봉사단체가 오지 않아 피해지역 복구가 늦어지고 또 효율적인 인력 배치 및 조정이 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이 할일이 없는 등의 '옥에 티'도 있었다.
이우태 유가면사무소 총무담당은 "오기로 한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런 연락없이 오지 않거나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오지 않고 오후 늦게 와서 잠깐 일하고 가기도 해 이들을 기다린다고 시간을 다 보내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당초 계획과는 달리 자원봉사인력들이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조정 배치되는 바람에 면, 읍, 마을 단위의 수해복구 작업에 차질을 빚는가 하면 수해피해가 별로 없는 곳에 배치되거나 할 일이 전달되지 않아 봉사자들이 손놓고 있다 일찍 돌아가는 경우도 있는 등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달성공단으로 배치받았다가 갑자기 봉사지가 변경돼 침수 피해입은 마을이라고 왔는데 뭘 해야하는지 얘기도 없고 수해 피해 가옥의 주인도 없어 그냥 여기저기 청소만 좀 하다 끝났다"고 허탈해 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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