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듣고 사람들은 '어이쿠, 가을이군!'하고 새삼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김상희의 명랑한 음색에 실린 이 노래는 회색 콘크리트 공간에 갇힌 도회인들을 한순간에 화안한 가을꽃길로 데려가는 마법의 지팡이같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봄의 전령이라면 코스모스는 '가을의 새 아씨'(이흥렬 '코스모스를 노래함') 라고나 할까.
사실은 늦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지만(올된 것은 한여름에도) 코스모스가 코스모스다운 것은 역시 가을이다.
하양, 분홍, 자줏빛 수수한 꽃들이 금방 세수한 소녀같은 얼굴로, 또는 가련한 여인처럼 실바람에 하느 작거리는 그 모습 때문에 '살살이꽃'이란 순우리식 애칭도 갖고 있다.
십수년 전만해도 도심의 빈터나 변두리 동네어귀에선 코스모스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시골아이들은 길가에 허드러진 코스모스 꽃잎을 바람에 불어보내며 시오리 학교길을 다녔다.
아마도 지금 40,50대 이상 여성들의 사진첩엔 지천으로 피어난 코스모스꽃숲에서 코스모스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 한 두장쯤 고이 간직돼 있을 게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코스모스는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추어 추억 속의 꽃으로 남아있다.
하양, 분홍빛깔 옛 코스모스가 사라진 자리엔 노랑 코스모스들이 왕성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거리조경용으로 즐겨심는 바람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노랑 코스모스는 겉모습은 비슷한데도 어쩐지 생뚱한 것이 낯설고 좀처럼 정이 안간다.
도심 화단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만 질 때는 더할 수 없이 참혹한 모습이 돼버리는 지난 여름의 루드베키아처럼.
대구 근교의 농촌마을로 이사간 지인의 집을 찾아갔다.
태풍 '매미'의 날카로운 손톱에 그나마 살짝 할퀴어지긴 했지만 제방이 무너지고 나무들이 꺾여 있었다.
그런데 집 입구에서 객을 반겨주는 것은 가녀린 코스모스와 키 작은 메리골드였다.
자연에 묻혀사니 세상욕심과도 멀어진다는 집주인이 말했다.
"이번 태풍에 키 큰 나무들은 넘어졌지만 낮고 부드러운 것들은 살아남았어요.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죠".
신(神)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꽃. 해말간 얼굴로 우리네 찌든 마음을 씻겨주는 코스모스를 이젠 추억의 앨범에서 꺼내 가을 하늘아래 어디서고 볼 수 있었으면….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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