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어령 前장관 경주엑스포 '문화 다양성 강연

"경주야말로 문화의 다양성과 공동가치를 토의하는데 있어 가장 적절한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라벌(경주)은 유.불.선 삼교와 동서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천년동안이나 다양하면서도 개방적인 문화를 꽃피워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24일 개막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국제학술회의에서 '문화의 다양성과 공동가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먼저 경주에 대해 큰 문화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신라 화랑은 양면성을 지닌 모든 것들 이를테면 문과 무, 자연과 인간, 정신과 육체 그리고 개인과 집단 등 서로 대립하고 모순하는 것들을 조화와 균형으로 포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 이상을 실천했던 젊은 리더들의 집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바로 그같은 공동체 문화에서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고, 직선적인 고구려 북방문화와 곡선적인 백제의 남방문화를 한데 아울러 통일 신라의 다성적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오늘날 문화 상대주의는 다양한 문화를 창조하기보단 혼란과 충돌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되고 반대로 문화 보편주의는 획일적인 문화제국주의로 변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고 '서랍론'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서랍은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는 것인데도 영어의 DRAWER에는 빼낸다는 일방적 뜻밖에는 없습니다.

일본어나 중국어도 다같이 빼는 개념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말로는 서랍을 빼고 닫는다하여 빼닫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에는 이항대립의 택일적인 선형사고에서 벗어나 양자를 모두 포용하는 개념을 나타내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는 "선형시스템의 바이너리(이분법적) 코드는 대립과 차이를 낳지만 원형적 구조에서는 융합과 유사의 관계로 변한다"며 "20세기의 정치 이데올로기나 산업사회의 특성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 택일의 싸움이었지만 21세기는 이것도 저것도 함께 융합시키는 양자병립의 시대"라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9.11테러와 월드컵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얘기한 뒤 신라의 이념인 원융회통(圓融會通)의 가치를 강조했다.

"원융회통의 키워드는 문화의 편견과 차별 혹은 배타적 문화의 대두를 막아 줄 것입니다.

원융회통은 적어도 9.11테러로 인류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일 월드컵 때의 축제문화로, 그리고 그 축구공이 상징하는 지구 공동체를 실현하는 키워드로 작용을 하게 될 것임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정육각형 20개와 정오각형 12개로 짜 맞춰 만든 축구공처럼 오각형과 육각형의 서로 다른 모양이 원융회통의 힘으로 결합될 때 문화문명은 충돌이 아니라 융합의 코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을 맺었다.

이 전 장관은 문예계간지의 초대주간으로, 대학교수로, 한국 고전문학의 연구자로, 88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세계적인 이벤트로 만든 문화기획자로, 그리고 초대 문화부장관의 역할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그의 모든 저작을 모은 전집 '이어령 라이브러리'(문학사상사.전 30권 예정) 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 초기 저작 모음 세 권이 출간됐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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