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업장 자진폐업 속출

'부도가 나야 회사 문을 닫는다'는 경영주의 사회적인 책임 의식이 약해지면서 부도가 아닌 경영환경 악화, 경영전망 불투명 등을 이유로 자진해서 폐업하는 업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의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이로 인해 가뜩이나 취약한 지역의 경제 기반이 더욱 약해지고 갑작스레 실직자로 전락한 근로자의 생계난과 불만 등을 야기, 우리 사회의 불안을 한층 높일 것이란 우려도 높다.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와 대구남부지사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보험가입 사업장 중 폐업신고한 곳은 1만여개로 2001년 5천200여개보다 두배로 증가했다.

이중 지역의 산업 기반과 직결되는 제조업의 경우도 지난해 문을 닫은 사업장이 2천200여개로 2001년 1천527개보다 크게 늘었으며 올 상반기에만 문을 닫은 제조업체도 1천여 곳에 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관계자는 "문을 닫는 업체의 대부분은 부도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경영환경 악화, 경영전망 불투명을 이유로 자진해서 폐업하는 것"이라며 "특히 문을 닫는 제조업체들 중 일부는 공장을 임금이 싼 중국.동남아로 이전하거나 아예 공장 부지를 제조업이 아닌 현금 수입업종으로 개발, 지역의 산업기반과 고용시장 규모가 더욱 약해지고 신규 고용창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고용하는 근로자가 많아 골치아프고 수익도 별로 없는 제조업 대신에 목욕탕이나 모텔 등 상대적으로 손쉽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업종으로 너도나도 바꾸거나 최근의 부동산 붐을 타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

최근 자진 폐업 방침을 정한 한 중견 섬유업체의 경우 공장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고 다른 한 업체는 공장을 그만 두는 대신에 관리직원 2, 3명만 두는 창고업을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도가 아닌 자진 폐업때문에 갑작스레 실직자 대열로 몰린 근로자들의 불만도 크다.

10여년간 다니던 섬유공장이 문을 닫고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는 근로자 김모(43)씨는 "부도도 아니고 자진 폐업으로 갑작스레 실직하게 되니 황당하다"며 "취업난 때문에 재취업도 어렵고 실업급여를 받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 가족의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구지방노동청 한 관계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경영을 이유로 폐업할 경우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실직 근로자 구제 대책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며 "경영주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이 약해진 탓도 있지만 우리의 경영환경이 그만큼 어려워진 때문인 만큼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기업의 자진폐업과 이로 인한 실직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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