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신문시장(1)-여론 다원화와 신문

자본력을 앞세운 일부 거대 전국지들의 지방시장 공략이 가속화 되고 있다.

무차별적인 경품제공을 통한 독자 확보에 나서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넉넉지 못한 지방언론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로 인해 해당 '지방의 논리'가 없어지고 단지 '서울의 눈 높이에 맞춘 서울의 시각'으로 온 나라가 재단되는 현상이 벌이지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지방언론이 없으면 지방은 살아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여론의 다양성과 민주 발전을 위해서는 언론 독과점 폐해를 막고, 다양한 논조를 펴는 신문들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지역 신문의 미래와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 신문시장에서 찾기로 했다.

편집자

독일 정계와 지식인 사회는 요즘 베를린시의 신문 시장 독과점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언론재벌 홀츠브링크그룹이 타게스슈피겔, 베를리너 차이퉁과 쿠리어 등 베를린 지역에서 3개 신문을 발행하는 베를리너 출판 그룹의 인수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이 베를리너그룹을 인수하게 된다면 베를린에서 신문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어서게 된다

이를 두고 독일연방독점관리청은 "여론의 다양성은 민주주의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라며 합병 반대를 주장하는 반면 홀츠브링크는 "신문산업 합리화를 위해 합병은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슈뢰더 총리가 지난달 26일 합병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베를린 지역 일간지 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논란' 속에는 나치즘의 독재를 경험한 이후 '여론 다원화'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독일인들의 언론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대다수 주에서 큰 언론그룹이라도 특정 지역 신문 시장의 30% 이상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인츠 대학의 홀츠바샤 교수는 "60년대 언론사 합병 바람이 여론 다양성 침해 시비를 일으키면서 사회적 이슈가 된 이후 70년 언론독점법을 제정했다"며 "기업의 독과점 규제 하한선이 50%인 것에 비하면 언론에 대한 독과점 규제는 아주 엄격하다"고 밝혔다.

특히 독과점 규제법이 한 미디어 그룹이 소유하는 전체 신문을 묶어 규제하는 탓에 특정 신문의 여론 독과점은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몇 개 신문의 지분을 가진 미디어그룹은 있어도 거대 신문사나 방송사는 찾아볼 수 없다.

독일언론인연맹 인쇄매체 간사장인 게르다 타일레씨는 "소수 의견이 전체 여론을 몰고 가는 부작용을 방지하고 민주주의적 토양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거대 언론그룹에 소속된 매체끼리도 편집권이 독립돼 있어 여론의 다양성이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전국지로 부를 수 있는 신문은 5개 정도. 발행부수도 규모가 큰 지역지들보다 오히려 적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3개 거대 일간지가 전체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점하는 한국과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대표적인 전국지로 꼽히는 헷센주 프랑크푸르트룬터샤우지의 발행 부수는 22만여부. 이중 헷센주를 제외하고 타 지역으로 배달되는 양은 30%선인 7만여부에 불과하다.

이 신문의 대기자(국제문제담당)로 한국사정에 밝은 카알 그로베-하겔박사는 "타지역에서 룬터샤우를 보는 독자들은 이지역 출신이거나 경제.문화 관련 뉴스가 많은 프랑크푸르트 지역의 소식을 알기 위한 경우"라며 "한국처럼 특정 신문이 국가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에서 중앙집권의 잔재와 수도권 집중이 가장 강한 나라인 프랑스도 마찬가지. 파리에서 발행되는 종합지와 경제지, 스포츠지를 포함해 전국지의 신문 시장 장악 비율은 25%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프랑스 리용대학에서 언론학을 강의하고 있는 베트란트 바레쎄씨는 "발행 부수 비율로 따진다면 북서지역 지방지인 웨스트 프랑스가 80만부로 전국 최고를 차지한다"며 "파리에서 발행되는 전국지는 이해관계를 가진 특수층이 아니면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전국지중 1위로 꼽히는 르몽드지의 2002년도 판매 부수는 36만부며, 2위인 르피가로지가 34만부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81년 지방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집권 당시 '언론의 독과점 방지와 다양성 보장법'을 만들어 1인 소유 자본이 여러개 신문을 통제할 경우 시장지배율 합계가 15%를 넘지 못하도록 언론독과점법을 제정했다.

바레쎄씨는 "우파 정권이 집권한 후 1985년 규제한도를 30% 완화하는 법개정이 있었으나 특정지의 장악력이 크지 않아 프랑스 신문 시장과는 솔직히 무관한 법"이라고 말했다.

1천300여개의 신문이 발행되는 영국에서도 신문시장 점유율이 25%를 넘는 신문에 대해서는 '우월적 사업자'로 선정, 감시와 규제에 나서고 있다.

또 발행부수가 50만부를 넘는 신문사의 소유주가 타 신문을 인수하려면 산업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독과점 규제가 심하다.

한국에 이어 전국지 발행 비율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일본에서도 전국지의 시장 장악률은 50%를 조금 넘은 수준이다.

도쿄를 제외한 고베와 홋카이도 등 대다수 지역에서 지방지가 전국지보다 구독률이 높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신문노조는 여론 다양성을 위해 '지방지 보기' 운동을 펴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 기자로 전국신문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묘친미끼(明珍美紀.여.40)씨는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방지가 강하기 때문에 특정지가 국민 여론을 장악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며 "그러나 일부 전국지가 특정 지역을 상대로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어 지방지 보기 운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운동의 계기는 지난 4월 이바라기 현에서 한 지방지가 경영상 문제로 문을 닫은 때문이지만 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지방지 보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사진:유럽의 여론은 지역신문에 의해 움직여진다. 많은 지역지들이 판매되는 독일 가판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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