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골목지도 만드는 '거리지도 역사가' 권상구씨

"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고택이 어디로 사라졌지? 분명히 다시 온다고 집주인과 약속했는데 …".

젊은 거리지도 역사가 권상구(29)씨. 그의 주된 임무는 대구 도심에 남아있는 고택, 초가집, 역사골목 등의 문화자원을 발굴해 이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거리지도를 만들고, 청소년, 일반인들에게 배포하고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일은 항상 난관에 부딪힌다.

개발논리에 밀려 헐려버린 고택, 적산가옥, 물이 샌다며 고풍스러운 옛기와를 없애버린 가옥, 수차례 방문해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야박한 집주인, 게다가 '물가조사하러 왔느냐?'며 타박을 주는 동네 노인들까지 권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대학 2학년때 대구YMCA에서 청소년 지도사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노동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군 제대 이후엔 휴학을 하면서까지 다양한 시민사회활동을 해왔다.

그는 후배들과 함께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3년 정도 휴학을 하기도 해 대학 입학 10년만인 지난 2월 늦깎이로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는 대구거리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조성진씨를 만나면서 사라지고 있는 대구의 골목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본격적인 골목지도 제작은 2001년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동안 계획한 '대구문화지도 만들기'를 통해서 시작됐다.

작년에는 동료 3명과 함께 대구 중구의 삼덕동 동인동 일대의 골목을 누비며 '대구골목문화 가이드북'을 만들었으며, 올해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 '동성로 신택리지'를 완성하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있다.

현재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인 그는 "조선조 실학자 이중환의 생활사 인문지도인 택리지를 현시점으로 가져와 대구 도심의 100여채 일식집, 30여채의 적산가옥, 그리고 이상화시인과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서상돈 고택 등을 발굴해 신세대 청소년들도 대구의 골목역사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약령시장, 염매시장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 곳에서 수십년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입을 빌려 생생한 얘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현재 그는 여러 시민단체의 간사 4명과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며 지도제작과 각종 거리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권씨는 "골목역사를 새로 쓰는 일은 생활사적 가치의 재발견"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골목마다 숨어있는 삶의 숨결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때로 한 골목을 100회 이상 가기도 한다.

그래야만 구석구석 잘 파악할 수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땀내나는 얘기를 속속들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담한 집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일제시대 한 고관이 살았던 적산가옥을 수십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이런 집들에 빠짐없이 있었던 석류나무, 오동나무, 향나무 등 나무들에 얽힌 얘기는 없는 지가 궁금했고, 집에 얽힌 사연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거리골목을 역사와 문화공간이 합치된 곳으로 재조명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개발논리에 밀려 헐리는 문화유산이 너무 많다"고 불만이다.

이상화 고택 경우 35층 빌딩을 세우려는 개발사와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국민운동본부가 옥신각신하고 있는 중이며, 대구 중구에만도 한때 50여채나 됐던 적산가옥이 현재는 30여채만 남았고, 이마저도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거리문화시민연대는 이상화 고택이 헐리지 않도록 이 고택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엄청난 피해보상금을 물려 개발사가 이 집을 매입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현재 대구에서 골목지도를 제작하는 곳은 대구광역시종합자원봉사센터와 거리문화 시민연대 두 곳이 있다.

이 두 곳에서 제작된 소책자 제목은 각각 '골목은 살아있다'와 '다같이 돌자 읍성한바퀴'. 골목지도 제작에 가장 큰 어려움은 예산부족이다.

대구시의 지원도 없고, 후원인도 거의 없다.

지도제작에 필요한 실비는 지도제작을 통한 광고, 해당단체의 거리축제 등 각종 행사를 통한 많지 않은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권씨의 경우 거의 무일푼으로 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비와 밥값만으로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닌다.

"이 일이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에 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권상구씨는 "대구 골목지도의 새로운 씨앗을 심는 기분으로 지속적으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보다 많은 경험이 축적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국을 누비며 골목 대동여지도를 그리고 싶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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