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태풍 뒤의 앞산

과학은 분야에 따라 발전 정도가 다르고, 기상과학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 아닌가 싶다.

생명과학은 인간을 복제하기에 이르렀고, 우주과학은 달이나 화성 등 외계에 사람이나 관측기계를 자유자재로 보낼 정도로 정밀하다.

반면 기상과학은 태풍의 규모나 진로를 우주과학 만큼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예측도 번번히 실패, 우리를 애먹이기 일쑤다.

기상과학이 이처럼 무력한 것은 자연의 위력이 너무 커 인간이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태풍 '매미좦가 휩쓸고 간 후 대구 앞산의 지도가 바뀌었다.

큰골 향토시인을 추념하는 시비공원의 못은 계곡 물에 떠밀려 온 자갈로 완전히 메워져 버렸고 취락정 휴게소 옆 비탈진 시멘트 등산로는 시멘트가 모두 벗겨져 맨땅이 돼 버렸다.

제 2약수터 왼쪽 지난해 '루사' 태풍 때 새로 생긴 물길은 이젠 완벽한 계곡이 돼 버렸다.

▲상인동 쪽의 달비골도 마찬가지였다.

맨땅 흙길 이어서 좋았던 등산로는 곳곳이 움푹움푹 패여 발길을 조심해야 할 정도이고, 저수지도 3분의 1은 자갈로 메워진 듯했다.

한여름 등산객의 눈을 피해 몰래 도둑목욕을 하던 계곡 바위 아래 물웅덩이도 흔적 없이 사라져 토사 위로 머리만 내 논 바위로 위치만을 짐작할 뿐이었다.

태풍 '매미'의 위력이 지난해의 '루사'보다 월등했음을 여기서도 실감했다.

▲그러나 이같은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신기한 것은 말벌들의 행태였다.

예전에도 점심을 먹을 때면 잡벌이나 개미들이 단내를 맡고 몰려들긴 했으나 이번엔 전에는 보이지 않던 말벌이 사람 주위를 윙윙 맴돌았다.

아마도 비.바람에 꽃들이 찢어지고 흩날리면서 먹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여서 물리지 않을까 겁도 났으나 저놈들도 수재민이나 다를 바 없다 싶어 본채만채 내버려 두었다.

▲자연은 공평무사하다고 한다.

준만큼 가져가고, 가져간 만큼 다시 준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이다.

한 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대구 앞산의 나무와 풀, 벌레와 새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다시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는 것도 자연의 순리를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가신 말벌들도 지금은 먹을거리를 찾아 사람 주위를 맴돌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졸지에 엄청난 재난을 당해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태풍 '매미'를 원망하며 기죽어 앉아 있지 말고 용기를 내 보자. 공평무사한 자연의 이치를 믿고 희망을 가져 보자.

최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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