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서러운 '황혼'

옛날 환갑잔치 때 절을 하며 '오래 사셨습니다'라던 덕담(德談)은 이미 악담(惡談)이 된지 오래다.

2001년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여자 80.1세, 남자는 72.84세로 남녀 평균수명도 76.53세를 넘어섰다.

천수(天壽)를 누린다면 80~90세를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총인구는 3% 정도밖에 늘지 않았는데 노인인구는 총인구 증가율의 9배가 되는 28%에 이르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7%를 넘어선 '고령화 사회'가 됐다.

이대로 가면 노인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 사회'도 멀지 않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건 인류의 큰 업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경고했듯,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시한폭탄'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는 데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경제 성장 둔화→노인복지 축소를 부르며, 재정 위기를 부를 수 있으므로 철저한 대비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불황으로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 같은 말이 나돌 정도로 각박해졌다.

이런 판에 놀며 살아야 하는 노인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어졌다.

정년을 채워도 30년 정도는 노부부가 집안에서 함께 놀며 살아야 하는데, 이 경우 부부 사이도 삐걱대기 마련이라 한다.

더구나 자식들과의 관계가 좋기만 할 리는 만무하다.

▲'매맞는 노인'들마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한 국감 자료 분석에 따르면, 노인 학대 발생은 2001년 384건, 지난해는 778건이었으며, 올해는 7월말 현재만도 1천830건이나 된다.

2년 사이에 무려 10배나 늘어난 셈이다.

욕설 등 언어.심리적 학대(41%)뿐 아니라 방치(24.2%)와 신체적 학대(15.5%)도 적지 않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대의 주체도 배우자(6%)는 다소 미미하나 아들(39.1%)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며느리(29.5%)라니 기가 찬다.

▲국가가 급속한 고령화와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앞으로 어떤 사태들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2, 3세대를 거치면서 고령화가 완만하게 진행된 선진국과도 사정이 사뭇 다르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옮겨가는데 불과 19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게다가 출산율마저 급격히 떨어져 2001년에는 1.3명에 지나지 않았다.

'매맞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세태지만 이 문제를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데 '황혼'의 서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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