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어느 날 마을이 잠기었다.

내가 순이네 살구나무를 보고 있을 때

그저 바람 속의 삭정이였다

철거 계고장이 왔을 때도 설마

꽃을 피우리라 믿지 않았지만

어김없는 계절, 스스로 풀어

꽃 진자리 젖꼭지가 아파 죽겠다던

그 쬐끄만 개살구 하나가

입안 가득 침 고이게 할 줄이야

물은 이미 차올라….

안용태 '내 사랑의 수몰지역' 부분

고향이 수몰되는 건 슬픈 일이다.

지도 위에서 완전히 없어져서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조차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 수몰된 고향 동네에서 함께 자란 순이에 대한 생각과 뒤안의 화사하던 살구나무에 대한 기억이 겹쳐져 있다.

시인이 마음속에 묻어둔 고향과 순이에 대한 생각-상실의 슬픔-을 같이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수법은 독특하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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