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방룡 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신라의 도성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국내 최고의 경주 유적 전문가'란 평을 듣고 있는 국립 경주박물관 박방룡(朴方龍.50) 학예연구관. 중학교 때부터 30여년 동안 경주의 유적 연구에 몰두한 덕분인지 그의 얼굴은 경주 남산에 있는 좌불을 닮았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불구, 어린이처럼 해맑은 얼굴에 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푸근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
경주 토박이인 그가 지금까지 경주 유적에 대해 쓴 논문이 28편, 보고서는 12편, 도록과 기고문 등은 44편에 이른다.
글의 분량도 방대하지만 해박한 지식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주의 유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를 찾아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도지동에서 태어난 그는 집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이거사(移車寺)란 옛 절터에서 신라 기왓장 같은 것들을 장난감마냥 갖고 놀며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엔 돌화살, 돌도끼 등을 주워 모으곤 했다.
중학생 때엔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옹이 운영하던 '어린이향토학교'(현 경주박물관학교)에서 야외 절터.첨성대 등 유적지에서 현장 학습을 하며 경주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수업을 받았다.
경주박물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7년. 이후 그는 집보다 박물관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그 결과 첫 논문인 '신라 관문성의 명문석 고찰'(82년 12월)을 시작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인 신라 왕궁 모습 고증 등에 대한 연구 논문들을 줄줄이 발표했다.
답사 때의 지표조사를 통해 500여점의 새로운 고고학 자료를 찾아내기도 했다.
30대 중반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에 들어갔고, 10년간의 끈질긴 주경야독 끝에 '신라도성 연구'란 논문으로 동아대에서 박사박위까지 받았다.
박 학예연구관이 수십년간 연구를 통해 복원한 신라 왕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라의 융성기라 할 수 있는 8~9세기의 신라 왕경의 가구는 17만8천976호에, 인구는 9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그 규모는 중국 당나라의 수도 등에 비해 작았지만 생활수준과 문화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고였습니다". 제정이 추진 중인 고도보존특별법과 관련해서 그는 "주민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며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보상을 토대로 고도보존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상님 덕분에 학예연구관까지 올랐고, 공부도 남못지 않게 했다는 그는 "앞으로는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우리문화재의 의미와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적극 알리겠다"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 학예연구관은 "경주에 오실 경우 경주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경주의 유적에 대한 자료를 한번 살펴보는 것이 신라 문화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신라의 도성, 문자로 본 신라 등을 주제로 한 책을 내고, 강연 등을 통해 신라를 알리는데 더욱 노력하겠다"며 말을 맺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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