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TV 토론프로

"TV에 나오는 사람이야".

얼마 전 막내아들의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에 참석했다가 주위의 학부모로부터 들은 말이다.

지금은 TV에 출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패널로 출연했던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지만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수용자의 참여가 지나치게 높은 TV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출연하지 않는 현재의 나를 두고 아직도 출연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채널을 고정시키지 않고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TV가 본격적인 대중매체로 등장한 60년대 미국의 텔레비전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린 맥루한은 "텔레비전에서 자기 자신의 역할, 지위, 사상을 강력하게 선언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에게 가해지는 완벽한 해설로 인해 시청자가 참여자로서 채워야 할 것이 없으면 시청자들은 오히려 불편한 심정을 느낀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걸레질을 하면서 즐기는 TV는 클로즈업을 이용하여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매체인데 클로즈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적으면 적을수록 시청자들은 소외된다는 뜻이다.

그래서다.

텔레비전의 토론프로그램은 '저정밀성'과 '고참여성'이라는 TV의 특성에 맞아야 한다.

아니라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차라리 효과적이다.

무거운 주제를 가져다 놓고 억지춘향으로 편을 가른 상대가 격돌하는 것은 매체낭비에 불과하다.

지난 일요일 방송된 KBS 2TV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 토론주제는 '원정출산, 누구의 책임인가?'였다.

평소 TV토론 프로그램을 즐기는 편이 아니고 원정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수 배우자는 심정으로 80분간을 시청했다.

하지만 결론은 실망이었다.

아무리 토론자의 말보다는 토론자의 매너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 TV라지만 논리가 없었다.

같은 패널에게조차 궤변이라고 공박 받은 말들이 난무했고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패널까지 있었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냉정하게 자신을 다스리면서 유머감각을 발휘하는 패널을 보고싶었는데….

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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