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이번 9월 불어닥친 태풍 매미는 한반도 남동부와 중부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수백명에 달하는 인명피해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고 재산적 손실 역시 미처 다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눈으로 보이는 손해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도 있는 법이다.

심지어 절망과 분노로 인해 쌓이는 스트레스는 정신적 질환까지 유발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피해지역 주민들의 상심과 절망은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재해지역으로 선포한 것은 물론이고 수해지역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새로 구입하는 자동차에 대한 세금감면 등의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추경예산은 3조원이 편성되었고 민간모금도 5백억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거기에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 인력이 전국에서 이 지역으로 들어와 실의에 빠진 피해 주민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피해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제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 해 지은 농사와 가꾸던 과실과 생산물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삶의 터전, 생산의 기반시설을 몽땅 잃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재해구호법이니 농어업재해대책법이니 하는 법률들이 제정되어 있지만 이 절망의 농어민들과 축산농가, 중소기업들에게 다시 복구의 의지를 다지게 하기에는 너무도 부실하기만 하다.

생각해 보라. 사망에 2천만원, 주택 전파에 500만원의 보상으로 어떻게 충분한 보상이 되겠는가. 그나마 보상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더욱 많은 상황이다.

어장을 잃은 경남 통영의 어느 마을 주민들은 상습 수해를 피해 아예 고향을 등졌다는 소식이다.

반복되는 수해에 진저리가 나는 데다 복구의 엄두조차 내지 못해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태풍피해는 사실 태풍 매미가 워낙 강풍을 동반한 유례없는 것이어서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라고 인식되었다.

그만큼 정부당국이나 행정기관 등의 책임이 면책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에 불어닥친 허리케인도 이렇게 많은 피해는 낳지 않았다고 한다.

태풍의 경로에 우리보다 훨씬 더 노출되어 있는 일본이 최근에 우리만큼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제서야 부산-경남 해안 지역의 상가와 아파트에 대해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선진국형 방재시스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3조원에 이르는 추경예산을 편성한 정부가 내년도 예산 중에서 수해방지예산은 오히려 2조2천억원 가량을 편성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실수"를 저지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니 소는 이미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것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건교부가 국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재난위험시설이 900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또다른 국감자료는 전국의 철도 교량 1천531 곳 가운데 79곳이 홍수에 취약함을 드러내주고 있다.

매번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은 또 괜찮겠거니 하면서 무심히 지나가고 다시 여름철이 오면 위험하다고 지적된 그 곳이 재난의 현장으로 변하곤 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흔히 목격해 왔다.

정부는 태풍이나 홍수 등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그 실질적 보상을 해 주는 이른바 자연재해보험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떤 자연재해를 입은 피해자가 그것을 단지 '운명의 장난'으로 여기고 혼자 몽땅 그 피해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은 보험제도가 발달된 오늘날 보면 참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담시키는 자연재해보험은 참으로 훌륭한 아이디어이다.

하루빨리 이런 좋은 제도는 도입해야 한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에 나왔던 정부의 약속은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많은 처방들이 공론과정을 거쳐 모두 실현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예산을 투자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재난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방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매년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세금감면하고 막대한 행정지원과 국민모금을 되풀이하는 것에 비하면 제대로 예산을 써서 자연재해를 막고 예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다.

내년에는 진정 이런 칼럼을 또다시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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