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대학입시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지금 각 대학은 9월부터 시작된 2학기 수시모집이 한창이고 200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여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한 사회의 이슈가 되어 수험생, 학부형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 중학생, 심지어는 초등학생의 학부모들까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험생들은 시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가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원서를 낼까 하는 것은 대부분 학부모 특히 어머니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즈음은 수시나 정시 모두에 복수 지원이 허용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좋은 대학·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까에 많은 고민이 따르고 있다.
대학선택에서 널리 애용되는 방법이 '점수에 맞추어 가기'다.
이 경우 가장 잘된 선택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 대학, 그 학과의 커트라인 부근에서 합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자기가 받은 점수가 커트라인보다 높으면 그 만큼은 손해 본 점수로 치부된다.
이것은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사는 방법은 될지언정, 자기의 일생을 좌우할 대학선택 방법은 아니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여러가지를 논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서열이 자로 재듯 확실하지 않으며, 그 서열이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나 입시학원에서 제시하는 배치표의 순서와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주 모 일간지에서 발표한 국내 이공계대학의 평가 결과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포항공대 1위, 카이스트 2위, 서울대 3위였다.
이 평가는 국내 유일의 민간 평가로서 10년 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으며, 그간 상당한 전통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 신뢰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 순서가 사회에서 인식되는 것과 일치할까?
지난 10년간의 평가에서 1, 2위 자리는 항상 포항공대와 카이스트가 나누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서울대를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간주하고, 그 기준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 우스운 일은 일부 지방 교육청이나 고등학교에서 서울대 입학생 수로서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고 서울대에 학생을 합격시킨 담당교사에게 여러가지 인센티브도 주기 때문에, 일부 교사들은 커트라인 낮은 서울대의 비인기 학과에 학생들을 지원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3위 대학 합격생의 숫자로 학업 성취도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항공대가 모든 학생에게 최고의 대학이라는 주장도 맞는 것은 아니다.
대학 평가는 아무리 정확해도 공평한 정량화가 불가능한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위의 세 대학은 이공계에서 국내 최고의 대학 그룹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 아래 단계에도 역시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 3, 4개가 있다.
즉 대학의 순위는 개개 대학별로 볼 것이 아니고, 비슷한 수준의 몇 개의 대학으로 구성된 클러스터 (Cluster)를 늘어놓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교육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이 클러스터에는 10개교 이상이 속해 매년 순위가 바뀔 정도로 학교 간 차이가 없는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순서의 변화가 적은 편이다.
그렇다면 수험생이나 학부모로서 바람직한 대학 선택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본인의 성적에 따라서 본인이 원하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 있기 때문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능력에 맞는 클러스터를 찾는 것이다.
다음에는 그 클러스터나 그 아래 클러스터 중에서 자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대학을 고르는 것이다.
클러스터 내부에서 세분한 대학서열은 큰 의미가 없는 허상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시한다.
그것보다는 본인의 적성을 고려하여 선택한 전공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대학전체의 순위와 학과의 순위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큰 대학에 가서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 좋은지, 작은 대학에 가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깊이 사귀는 것이 좋은지, 큰 도시에서 사회와의 접촉을 최대화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지역 대학에서 조용히 학업에 전념하는 것이 좋은지, 사립대학의 유연성이 좋은지, 국립대학의 안정성이 좋은지, 여러가지 고려 사항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모두 개인적인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은 없다.
그리고 개인적인 선택은 부모가 하는 것보다도, 부모는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최종 결정은 수험생 본인이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길에서 책임감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학을 제대로 고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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